[기고] 고정밀 지도 반출은 호시우행(虎視牛行) 해야

2025-04-28

인공지능(AI) 산업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생성형 AI에 주변 사물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비전 처리 기술이 더해지면서 AI 산업은 물리적 형태를 가진 피지컬 AI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AI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양질 데이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AI 플랫폼이 디지털 데이터를 처리하는 단계를 넘어 자율주행차나 휴머노이드 로봇 같은 피지컬 AI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고정밀 공간 정보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구글이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 1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반출을 예외적으로 허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고정밀 지도 반출을 찬성하는 쪽은 관광 산업 활성화와 국내 산업 생태계 발전을 앞세운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활용한 구글 지도 서비스는 외국인 관광객의 여행 편의를 증대해 한국의 관광 수입 증대에 도움이 되고, 구글의 위치 기반 서비스로 한국 스타트업 등 산업 전반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구글의 요청대로 우리나라의 고정밀 지도를 예외적으로 구글에 제공할 만큼 실익이 있는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지도 반출을 찬성하는 쪽은 고정밀 지도 정보 기반의 구글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하면 수조원의 관광 수입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그러나 해당 연구의 저자도 논문에 직접 기술한 바와 같이 “방한 외국인 관광객의 전체 증가에서 구글맵스가 기여한 부분을 정확히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필자가 해당 논문의 경제적 기대효과 추정치를 검산한 결과 해당 논문의 경제적 추정치 계산에 오류가 존재한다. 생산 유발 효과와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약 10배 과다 추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는 구글이 한국 정부가 1966년부터 1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을 투입해 구축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에 무임승차해 자사의 비즈니스 경쟁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 구글은 국내에서 발생한 매출 대부분을 해외법인 매출로 처리해 우리나라에서 매우 낮은 법인세를 부담해왔다.구글의 요구대로 우리나라의 고정밀 지도를 반출하는 것은 국내 산업 발전으로 선순환되기보다는 구글에만 이익이 되는 구조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형평성 측면에서도 향후 중국 바이두 등이 고정밀 지도 반출을 요청하면 한국 정부가 거절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우리나라의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비관세 장벽으로 간주하며 통상 압박을 하는만큼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상호 관세 조치에 대응하는 데에도 우리나라 디지털 산업의 장기 성패를 고려해야 한다. 당장 상호 관세를 피하기 위해 핵심 국가 전략산업 기반인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쉽사리 내어주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각국의 디지털 경제에서 디지털 플랫폼은 슈퍼 앱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도 서비스는 슈퍼 앱 전략의 핵심이다. 동남아시아의 그랩, 중국의 가오더 지도 모두 공간 정보 데이터가 서비스의 핵심이다. 구글도 마찬가지다. 위치 데이터는 구글이 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사용료와 광고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자원이다. 디지털 플랫폼은 지도 API를 활용해 배달, 숙박, 부동산, 의료 등 다양한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제는 구글의 API 사용료가 국내 사업자보다 약 10배 높다는 점이다. 구글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면 연간 거래액 172조원에 달하는 국내 O2O 산업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

고정밀 공간 데이터는 AI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국가 핵심 전략 자산이다. 로보 택시, 드론 배송 등 디지털 세계와 현실 공간이 연결되는 피지컬 AI 산업 핵심은 결국 공간 정보에 있다.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AI 산업에 100조, 2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는 와중에 그 토대가 되는 핵심 전략 자산을 명확한 실익 없이 외국 기업에 넘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무쪼록 정부가 호랑이의 '날카로운 눈(호시·虎視)'으로 정황을 살피고, '소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우행·牛行)' 구글의 요청을 검토하길 바란다.

안용길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겸 디지털혁신연구소 소장 yongkil.ahn@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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