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축산업에서 동물복지는 단순한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하고 건강한 축산물 생산을 위한 구조적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이나 습성,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곧 식품 안전과 생산 안정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복지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한 평가 기준이 전제돼야 한다.
농장의 동물복지 수준을 평가하려면, 먼저 동물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사료와 물, 충분한 사육공간, 청결하고 편안한 휴식공간, 본능적 행동 표현의 기회, 동료와의 사회적 교감, 그리고 사람의 관리 방식 등은 모두 복지 수준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다.
기존엔 이러한 요소를 주로 시설·환경 중심으로 평가해왔다. 예를 들어 동물의 굶주림·고통·불편함·스트레스 등의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마릿수당 사료 급이기수, 사육면적, 바닥 구조, 깔짚 제공 여부, 조도·환기 등을 점검했다. 이 방식은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아 비교적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동물이 실제 어떤 상태를 경험하는지는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시설투자에 따른 생산자의 부담만 강조되고 동물의 경험은 간과된다.
최근 유럽 등 동물복지 선도국에서는 동물 기반 평가 방식이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이 방식은 실제 동물의 영양·건강 상태, 행동 표현, 사람과의 상호작용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해 복지를 판단한다. 특히 행동은 동물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가장 중심적인 지표로 스트레스·불안, 또는 긍정적인 감정까지 드러난다.
행동 기반 평가를 통해 현대식 사육시스템에서 동물이 얼마나 잘 적응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는지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단지 복지 향상에 그치지 않고, 생산성 개선과 소비자 신뢰 확보로 이어진다. 생산자에게는 복지 향상이 곧 농장의 경쟁력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에 지속가능한 축산을 구현할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 축산업도 행동 기반 동물복지 평가시스템을 발빠르게 도입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한 기초 자료 축적이 시급하다. 특히 국내 축종별 행동 특성과 관리 현실을 반영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단순히 시설을 정비하는 방식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동물의 실제 상태, 즉 그들이 경험하는 것을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선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