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대의와 21세기 소강, 그리고 전태일

2024-10-25

[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나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내 의식의 바탕은 20세기 인식이다. 이런 농담이 있다. 석기시대 동굴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안 돼!”라는 글이 있었다고.

나는 지금 2∼30대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에 많은 이질감을 느끼고 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아버지(1918∼2001)와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 대학 때부터 의견 충돌이 제법 있었다. 또한 1985년생인 아들하고도 생각을 달리하는 관점이 꽤 많다.

이쯤 살아보니 나 역시 석기시대 이래 인간사회의 흔히 있는 갈등인 윗세대와 아랫세대와의 차이를 넘지는 못했다. 20세기 중후반의 젊은이와 21세기의 젊은이들이 사회현상에 대응하는 방식은 서로 많이 다르다.

도올 김용옥은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사회적인 성향을 대의(大儀)와 소강(小康)으로 나누었다. 대의는 공공의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소강은 개인의 안락에 집착한다는 설명이다. 20세기 젊은이의 대의와 21세기 젊은이의 소강을 나름대로 살펴보았다.

1. 대의를 따른 20세기 두 젊은이의 예

① 레파 라디치(Lepa Radić 1925〜1943)는 1941년 나치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했을 때 15세 소녀로 빨치산에 합류해 총을 들고 저항하다 1943년 나치에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나치는 레파 라디치에게 공범이 누군지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소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우리 민중의 배신자가 아니다. 너희들이 찾는 공범은 내 원수를 갚으러 너희들 앞에 나타날 때 알 수 있다!” 그리고는 공개 교수형을 당했다. 당시 17살이었다.

② 1955년 미국은 어떠한 정당한 이유도 없이 자신이 서명한 국제조약을 팽개치고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단했다. 북베트남의 호찌민 정권에 비해 도덕성을 잃은 남베트남 정권은 강압정치와 부정부패, 그리고 불교탄압으로 민심을 잃었다.

1960년 자생적으로 탄생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이 남베트남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위기를 느낀 미국은 베트남에 직접적으로 군사개입을 했다. 이른바 베트남전쟁(1960〜1975)은 이렇게 시작됐다.

응우옌 반 쪼이(Nguyễn Văn Trỗi 1940〜1964)는 전기공 노동자였다. 1964년 5월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1916〜2009) 미국방부장관이 베트남을 방문하자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다리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가 그만 들켜버렸다. 그날은 결혼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은 날이었다.

체포 후 6개월 동안 남베트남 경찰의 잔인한 고문과 회유를 받았으나 조직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았다. 그는 공개 총살형을 선고받고 그해 10월 24살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총살형이 집행되기 전 응우옌 반 쪼이는 사형집행을 참관한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미국은 비행기 폭격으로 우리 인민을 살육하고 있습니다. 조국을 침략하는 모든 계획을 세웠던 자는 바로 저 로버트 맥나마라입니다. 이 땅에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죄를 범한 맥나마라를 나는 처단하고 싶었습니다.”

총살대에 묶이자 말했다. ˝소원이 있다. 조국의 하늘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 눈가리개를 벗겨 달라.˝ 눈가리개가 풀리자 베트남 민족에게 장엄한 사자후를 남겼다.

내 이 말을 꼭 기억해 달라!

타도 미제국주의!

베트남 만세! 호찌민 만세!

2. 고전(古典)에서 찾아 본 21세기 지금의 우리 젊은이 유형

① 양주(楊朱 BC 기원전 440? ~ 360?)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다. 명분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는 사상을 제시했다 양주는 사회적 ‘이익’이라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이익’이 하나의 숭고한 목적이 되면 자신의 소중한 삶을 하나의 수단으로 폄하한다고 봤다.

양주는 국가가 제공하는 어떤 이익이나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자유를 원했다. 요즘말로 하면 철저한 아나키즘 사상이다.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하여도 뽑지 않겠다. 천하를 내게 준다 해도 받지 않겠다. 사람마다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도 하지 않는다면 천하는 절로 다스려질 것이다.

“지나친 명분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고, 남을 돕든 침해하든 간에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했던 양주는 진정한 개인주의자였다.

②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약 280∼233년)는 전국시대 사상가로 인간은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 법가학파의 대표 인물이다. 독재군주가 권력으로 신하와 민중을 통제해 부국강병을 이루는 이론과 방법을 설파했다.

일반적으로 전제 군주정치 아래에서 민중은 이해타산에 빠진다. 자신에게 이익과 해로움을 계산해서 왕이 주는 상과 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따라서 국가정책에 참여한다. 이기주의자는 자신에게 이롭다면 독재군주의 명령을 듣는 사람이다. 한비자는 양주의 개인주의를 경계하고 실리적 이기주의를 주장했다.

3. 역사는 돌고 도는가?

20세기에 새로운 사회모델로 각광 받았던 소비에트가 1991년 스스로 해체했다. 그 뒤 신자유주의란 미국식 자본주의경제가 지구 전체를 뒤덮었다. 맑스 이론으로 중국을 붉은 대륙으로 만든 중국 공산당도 그대로 신자유주의 경제에 빠져들었다. 미국과 인류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전쟁을 치른 베트남도 경제에서만은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21세기에 들어 거대한 사회적인 명분인 대의를 쫓는 20세기형 젊은이들을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2천년도 훨씬 지난 기원전 전국시대 양주와 한비자란 인물의 옛 사상을 단순히 이해하기보다 색다르게 재해석하니, 21세기 우리 젊은이들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풍요 속에서 상대적이고 개인적인 빈곤을 뼈 속 깊이 느끼고 있다. 천정부지의 집값과 일자리 부족에 따른 취직걱정이 가장 큰 근심이다. 때맞은 결혼과 출산에는 언감생심, 전혀 마음을 줄 수 없다.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물든 젊은이들은 양주처럼 터럭 한 개 뽑아 천하가 이롭다 하더라도 뽑지 않을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있거나, 강력한 권력 설사 독재권력에 의지해서라도 개인의 이해타산을 맞추는 이기심이 작동하는 것 같다.

4. 우리 시대의 모습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불교용어가 있다. 현상은 시기에 맞물린다는 뜻이다. 겨울에는 두꺼운 옷이 입고 여름에는 얇은 옷을 입는다는 이치다. 병에 따라 적합한 약을 준다는 뜻의 응병여약(應病與藥)은 깨달음의 수련과정에서 인간을 풀어 놓을 것이냐, 조여 단속하는 것이 좋은 가를 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방법을 말한다.

촛불로 우리 사회는 민주화란 험한 산을 넘었다. 넘고 보니 그보다 더 험한 산들이 줄줄이 놓여 있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고약한 산들이다. 험악한 여러 산들을 넘기 위해 기성세대의 20세기 민주화 장비는 시절인연에 맞지 않다. 21세기 응변여약의 장비가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5.

2022년 대선에서 기성세대의 미래를 곧 짊어질 젊은이들을 위한 정책대결이 사라졌다. 오직 집권을 위한 마타도어(흑색선전)만 아무 거리낌 없이 어지러웠다.

기성세대가 앞으로 젊은이들에게 의지해 노후를 보내려면 젊은이들에게 무언가 창조적인 에너지를 제공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젊은이들에게 상대 후보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만 불타게 만들었다.

나는 사회생활에서 기득권을 누리면서 한편으로는 20세기형 가치를 쫓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내 아버지는 사회문제에 눈 돌리는 나에게 먼저 가족들의 안락을 우선시하라는 말씀을 귀 따갑도록 하셨다. 하지만 나는 사회민주화에 더 많이 눈을 돌렸다.

서울에 사는 아들에게 아주 작은 전세집조차 마련해 주지 못해 집값 폭등에 아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젊은 날에 돈의 현실적인 무게를 과소평가한 결과 늙으면서 서서히 불편해온다.

바른 가치(진리추구)는 이상(理想 Ideale)이며 불교용어로 진제(眞諦)라 할 수 있다. 건전한 돈(경제=실리)은 현실(現實 Reality)이며 불교용어로 속제(俗諦)라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진제인 사회적 가치(대의=진리추구)와 속제인 개인 가치(소강=경제실리)를 조화롭게 추구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는 게 기성세대의 역할이 아닐까?

6.

마침 우리의 젊은(?)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탔다. 124년의 노벨상 역사에서 문학상은 121명이 받았다. 여성 수상자는 모두 18명인데 한강은 아시아 여성으로 최초라 하니 한강 개인에게도 물론 영광이지만 우리 사회가 갖는 상의 값어치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엄청난 정신문화사적인 도약의 계기를 맞게 됐다. 21세기 초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 4강 신화를 마련하면서부터 서서히 한류바람을 일으켰다. 방탄소년단(BTS)이란 음악 그룹이 우리말 이름을 걸고 미국 대중음악계를 석권한 것은 상상도 못했던 기적이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의 아카데미상이라는 에미상을 받았고 『기생충』이란 영화는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또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라는 18세 젊은이는 세계 3대 피아노콩쿠르 중 하나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한국 예술은 권위 있는 상을 받아 세계적인 예술강국의 위상을 전 세계적으로 높이 펄럭이고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저력이 21세기에 솟구치는 것은 우리 젊은이들의 소강(小康)적인 우수한 자질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21세기 오늘, 우리에게 찾아온 정말 경탄할만한 일은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한강은 1970년생으로 노벨상 수상자로써는 비교적 젊은 나이다.

한강은 아주 어린 나이인 10살에 5·18 광주에 있었다. 12살 무렵 끔찍한 5·18의 광주사진을 보면서 예민한 감수성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자라면서 5·18의 흔적을 가슴에 차곡차곡 쌓았다.

광주의 5·18은 우리 역사에서 무엇이었던가? 5·18의 광주에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폭력과 그에 저항한 인간존엄이 공존했다. 5·18은 잔혹한 폭력에 맞서 인간존엄을 지키기 위한 절규가 아니었던가?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대의(大義)다. 한강은 대의를 명료하게 의식하고 처절한 사실을 탁월한 문장력으로 묘사해 역사의 깊은 의미를 드러내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광주에서의 5·18 10년 전, 한강이 태어난 해인 1970년에 우리 사회가 ‘도저히 잊어서는 안 되는 대의’를 외치며 숨진 청년 전태일이 있었다. 내가 이제까지 묘사한 전태일 정신은 앞으로 우리 시대뿐만 아니라 인류사에서도 영원한 고전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강처럼 소강에 머무르지 않고 대의를 찾는 젊은이가 곧 나타나 전태일 정신이란 위대한 대의를 드높은 예술로 드러낼 날이 있다고 나는 분명 믿는다.

저작권자 © 건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