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

2024-10-24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의 배경은 1940년대 나치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다. 어느 날 수용소에 끌려온 한 남자가 “나는 유대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라고 주장한다. 이 소식을 접한 나치 장교가 그를 불러 페르시아어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동생이 있는 테헤란에 가서 식당을 열고 싶다”는 거다.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가짜 페르시아어를 ‘발명’해나가는 과정은 위태롭기만 하다.

영화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장교의 태도였다. 그는 유대인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직분인 식당 관리에 충실할 뿐이다. 살인자들을 배불리 먹이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살인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놓인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일까. 그래서 ‘테헤란 식당’이란 판타지를 만들어낸 건 아닐까.

유튜브 ‘김주환의 내면소통’ 중 한 대목이다. “잘 따져보세요. 어쩔 수 없는 것은 없어요. 더 싫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참는 거라고요? 그것도 결국엔 스스로 원하는 걸 하는 거예요.”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어쩔 수 없다는 그 상황도 자신의 선택임을 알아차려야 자율성을 지킬 수 있고, 그래야 자기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 속 장교가 친위대에 지원하고, 수용소 장교로 근무한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사실이 아니다. 나 역시 ‘하기 싫지만 해야 했던’ 일들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되뇔 때가 있었다. 하지만 김 교수 말처럼 그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스스로 자초한 결과였다.

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대개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스스로의 선택임을 부정한 채 도저히 다른 방법은 없다고 변명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말투부터 버려야 하지 않을까. ‘내 선택이 아니다’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내가 설 곳은 그만큼 줄어든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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