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어떻게 사람을 바꾸나 보라…감동적 인간 승리

2024-10-24

[강력한 오스카 작품상 후보작 ‘싱싱’]

교도소 재활 프로그램 실화 바탕…재소자 13명 출연

주연 콜맨 도밍고 탁월한 연기력, 남우주연상 거론

그레그 크웨다르 감독이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연기를 가르쳤던 경험과 살인죄 누명을 쓰고 25년간 억울한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어느 한 예술가의 실화를 토대로, 연극과 같은 예술 프로그램이 재소자들의 재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감동을 생생하게 전하는 영화. 지난 7월 개봉 이래 꾸준히 오스카상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싱싱(Sing Sing)’은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의 클리셰와는 거리가 멀다. 콘크리트와 철조망으로 화면을 채우는 대신, 실화를 바탕으로 실제 교도소에서 촬영됐고 연출, 각본은 물론 스태프들이 교도소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는 실제 교도소 수감 생활 중 RTA에 참여했던 비전문 배우 13명이 출연한다.

RTA란 Rehabilitation Through the Arts, 즉 ‘예술을 통한 재활 프로그램’을 뜻한다. 영화는 RTA 참여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예술 프로그램의 치유 기능을 강조한다. 죽음의 방식조차도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다를 만큼 거친 삶을 살아온 남성들이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고 약한 모습을 고백함으로 변화에 이르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위압적 마초 문화에 젖어 평생을 범죄의 언저리에서 살아왔던 수감자들이 연기에 몰입한다. 그들은 RTA에 참여하면서 셰익스피어 희곡, 드라마, 코미디를 통해 삶의 목적, 멘토링, 공동체 의식과 접하게 된다. 수색, 보안 검사, 야간 봉쇄 등 감옥의 폐쇄적 일상의 지루함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어 궁극적으로 사회가 원하는 커뮤니티 지향의 사람으로 변화해 간다.

수치심과 죄책감이 가득한 곳, 한때는 말하는 것조차 금지됐던 뉴욕 주 최고 보안 등급의 감옥소 싱싱.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남자가 있다. 존 디바인 G. 위트필드(콜맨 도밍고)와 클레런스 매클린. (재소자 매클린이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디바인 G.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살인죄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기독교 신앙에 매달린다. DJ와 배우 경력이 있는 그는 연극, 음악, 춤, 시각 예술 등을 활용해 수감자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RTA를 창안해 낸다. 그는 예술이 재활과 개인적 성장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잠재적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RTA를 야심 차게 밀고 나가는 디바인 G.는 미래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교도소 벽 너머의 삶을 보게 한다. 그리고 교도소 내 변호사로 일하며 도서관에서 법을 공부하고 다른 수감자의 법적 소송을 돕는다.

디바인 G.의 리더십은 극단에 갱 멤버 매클린이 합류하면서 도전을 받는다. 무장 강도로 싱싱에 들어온 그는 감옥에서도 여전히 마약을 거래한다. 그가 우연히 RTA를 접하게 되고 연기에 입문한다. 감옥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인 그에게 연기 연습은 마이크 타이슨이 발레 연습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점차 RTA를 통해 감정을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고 무대 위에서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매클린, 어느덧 무대 위의 자연스러운 배우가 되어 있다. 그는 디바인G.와 교류하며 그의 진정성에 감화되고 결국 RTA를 통해 갱스터의 정체성을 벗어내고 새사람이 된다. 상반된 두 남자 디바인 G와 매클린, 대립에서 시작된 이들 사이에 우정이 싹튼다. 이들의 브로맨스는 이후 매클린이 이 영화의 작가 중 한 명으로 극본에 참여하는 일로 이어진다.

그동안 연습했던 시간여행 뮤지컬 코미디 ‘Breakin’ the Mummy’s Code’의 공연 날이 임박해 오자 무대에 오르기를 겁내 하는 터프가이들은 순진하고 귀여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디바인 G.는 공연을 위해 자신의 사면 심사를 연기한다.

RTA의 참된 의미는 공연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중요한 건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치유의 순간들이다. 강함만이 생존의 수단이던 그들에게서 인간의 부드러운 본성을 찾아내는 일이다.

절망 속에서 수감자들은 인생의 새로운 목적과 자아를 찾는 험난한 여정을 함께 공유한다. 영화는 다수의 실제 수감자들을 캐스팅하여 진정성과 극적인 연대감의 효과를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평생 폭력을 휘두르던 범죄자들이 그들의 실제 삶을 연기한다. 영화 ‘싱싱’은 연극을 통해 ‘감옥 속의 청중’과 직접 대화하고 그들의 앞날에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싱싱’은 콜맨 도밍고의 탁월한 연기력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는 영화다. 지난해 ‘러스틴’으로 오스카상 남우주연 후보에 올랐던 그는 올해에도 ‘싱싱’에서의 감동적인 연기로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될 것이 분명하다. 한편 타임지는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선정했다.

억울한 옥살이 25년,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글을 쓰고 연극에 대한 정열을 불태웠던 디바인 G.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풀려난다. 그리고 이후에도 교도소 개혁과 수감자 재활을 위한 노력을 지속, RTA 프로그램은 뉴욕 주 전역의 교정시설로 확장됐다. 주립 교도소의 재범률이 평균 60%로 추산되는 것에 반해 RTA를 경험한 수감자들의 재범률은 2%에 불과한 통계가 프로그램의 실효를 입증한다.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고 그중 일곱 권이 각색되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출판 관련 상도 다섯 차례 수상했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수치심과 죄책감이 생각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행동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예술은 절망에 빠져 있는 자들을 설득하고 희망을 제시하는 힘을 지녔다. 가장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제시하는 영화 ‘싱싱’에 담긴 메시지다.

김 정 영화 평론가 ckkim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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