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만의 ‘아름다운 숫자’ 47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3-22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다. ‘한국에 대통령이 20명이나 있었나’ 하고 놀랄 이가 많을 듯하다. 이는 대통령의 대(代)를 정하는 한국 특유의 규칙과 관련이 있다. 같은 대통령이 연임 등을 통해 계속해서 여러 번 재직하는 경우에도 대를 각자 따로 매긴다. 그래서 1948∼1960년 세 차례 집권한 이승만 대통령은 1·2·3대 대통령이다. 1963∼1979년 연속해서 다섯 번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은 5·6·7·8·9대 대통령이다. 1980∼1988년 청와대를 지킨 전두환 대통령은 11·12대 대통령이다. 그러니 지금이 20대 대통령 임기라고는 해도 대통령을 지낸 인물 수만 따지면 13명에 그친다.

일본도 행정부 수반인 총리의 대수를 매기는 방법이 한국과 비슷하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은 중의원(하원) 총선거가 끝나면 의원들의 투표를 거쳐 신임 총리를 뽑는 구조다. 실은 과반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를 맡는 것이 당연한 만큼 중의원 투표는 요식 절차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2024년 10월 취임해 재임 기간이 아직 6개월도 안 됐지만 일본 역사상 제102대 그리고 103대 총리다. 102대 총리로 취임한 직후 중의원을 해산하고 새롭게 실시한 총선의 결과 103대 총리로 선출됐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쳐 9년 가까이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우 90·96·97·98대 총리에 해당한다.

미국은 대통령의 대수를 붙이는 공식이 한국이나 일본과 다르다. 동일인이 연임하면 그냥 하나의 대(代)로 간주한다. ‘건국의 아버지’로서 연속해서 두 번 임기를 수행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우리처럼 제1·2대 대통령이 아니고 그냥 1대 대통령이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연임에 성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우 1933년 시작해 1945년 끝난 장기 집권에도 불구하고 그냥 32대 대통령일 뿐이다. 반면 1889년 연임에 실패해 물러났다가 4년 뒤 대선에서 이겨 1893년 백악관에 복귀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동일인이지만 22대 대통령이자 24대 대통령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제45·47대 대통령인 트럼프는 ‘47’이란 숫자가 무척 마음에 드는 듯하다. 본인은 “선거 사기”라며 부정하지만 45대 임기(2017∼2021년)는 조 바이든 후보에게 패해 연임이 무산되며 실패로 끝났다. 반면 오는 2029년 1월까지 이어질 47대 임기는 이제 막 시작한 만큼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트럼프가 21일(현지시간) 개발 중인 미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에 ‘F-47’이란 이름을 붙였다. 현재 미 공군의 주력인 F-35보다 열둘이나 늘었다. 트럼프는 47을 “아름다운 숫자”라고 불렀다. 자신이 미국의 47대 대통령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앞으로 4년간 트럼프가 또 무슨 일을 할지 숨죽이고 지켜볼 일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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