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실제 나이보다 젊거나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난다. 왜 이들은 또래보다 활력이 넘칠까. 그 비밀은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생물학적 나이’라는 개념에 숨어 있다.
최근 연구들은 인간의 신체 상태와 기능을 실제 나이보다 더 정확히 설명하는 지표로 생물학적 나이를 지목한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기간이 같아도 누군가는 생물학적으로 더 젊고, 또 다른 누군가는 더 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많다면 질병 위험 역시 높아질 수 있어 건강 예측 지표로도 활용할 수 있다.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기 위한 기술은 진화하고 있다. 단백질체, 유전체, 대사체 분석 등 다양한 접근법이 사용되고 있으나 가장 신뢰받는 방법은 DNA 메틸화 패턴을 분석하는 ‘에이징 클록(Aging Clock)’이다. DNA 메틸화는 유전자 염기서열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작용이다.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DNA 메틸화 패턴에는 규칙적인 변화가 나타나며, 이러한 변화는 연령에 따라 매우 일관되게 발생한다. 이 때문에 고정밀 분석 기술을 통해 수만개의 ‘CpG 사이트(메틸화가 일어나는 DNA 부위)’를 동시 분석해 객관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소속 과학자인 스티브 호바스 박사는 혈액, 피부, 심지어 뇌 조직에서도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최초의 에이징 클록을 개발했다. 이후 이 기술은 정밀도를 높여 그림에이지(GrimAge) 등 고도화된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에이징 클록은 생물학적 노화를 ‘보이는 수치’로 측정할 수 있게 하며, 다양한 식단이나 건강관리 방법이 실제로 노화를 얼마나 늦추는지 판단하는 핵심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을 높인다. 생물학적 나이를 결정짓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식생활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인의 식습관은 염증, 호르몬 대사, 면역 반응, 심혈관 기능 등 생리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노화 속도와도 직결된다.
이와 관련해 2024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8주간 비건 식단을 유지한 참가자들이 DNA 메틸화 기반 에이징 클록에서 생물학적 나이가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잡식을 한 그룹과 비교해 심혈관, 호르몬, 간 기능, 염증 및 대사 지표에서도 전반적인 개선이 나타났다. 단기간의 식이 조절만으로도 생물학적 나이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2023년 이스라엘 벤구리온대의 아이리스 샤이 박사는 폴리페놀이 풍부한 식단이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엽산·비타민 B12 보충제 섭취군, 오메가3 장기 섭취군에서 생물학적 나이가 감소하는 효과가 확인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연구는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음식과 영양소가 생물학적 나이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아직 과제도 많다. 생물학적 나이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얼마나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지, 식이 조절에 따른 생물학적 나이 변화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개인의 유전적 특징, 장내 미생물, 운동량 등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지 등은 여전히 연구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유전적 정보와 생리 상태에 기반한 맞춤형 식이 전략이 생물학적 노화 조절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는 안전한 예방 전략으로서, 현대 의학과 임상영양학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정밀한 측정 기술과 과학적 연구, 적절한 식품을 통해 노화 속도를 늦추고, 심지어 되돌릴 수도 있는 시대에 다가서고 있다. 앞으로는 건강기능식품, 보충제, 식단 등이 에이징 클록을 조절하는 도구로 상용화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몸의 시계를 되돌리는 열쇠는, 어쩌면 오늘 우리가 고른 한 끼 식사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