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두 선택지

2025-01-20

반도체 산업 구조는 1980년대 중반에 큰 변화를 맞았다. 반도체를 설계만 하는 팹리스(Fabless)와 제조만 하는 파운드리(Foundry)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자리를 잡게 됐고, 각 제조 공정별로 전문 기업들이 등장했다.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 흐름에 따라 반도체 제조 공정을 한 국가나 지역에서 모두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각 핵심 역량을 발휘하는 글로벌 공급망이 형성됐다.

오랜 기간에 구축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반도체를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구조였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잘 활용한 미국은 반도체 제조 공정 중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 분야(팹리스)에 집중했다.

바이든 보조금 약속 불확실해져

보조금 전제 현지투자 늘리거나

용인 클러스터 완성 속도 높여야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엔비디아를 비롯해 퀄컴·브로드컴·AMD 같은 기업들이 성장했다. 이들 팹리스 기업은 설계한 반도체에 대한 지식재산권(IP)을 갖고 있으며, 자사 브랜드로 제품이 출시되기 때문에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점유율이 가장 높다.

그런데 지난 2021년 미국 정부가 반도체 등 4개 핵심 산업 공급망에 발동한 행정 명령 등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미국에서 직접 생산되는 반도체의 비중은 매우 낮다. 반도체는 대만·한국·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강하게 비판해온 정치인이 20일(현지시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다.

그는 수년 전부터 대만의 TSMC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중요한 기업으로 부상하자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빼앗아 갔다”고 비판했다. 대선 기간에 “미국의 경제 부활을 위해 다른 나라들로부터 제조업을 다시 미국으로 찾아오겠다”고 공약을 제시했다. 그가 언급한 ‘다른 나라들’에 한국도 포함돼 있다.

2021년 글로벌 반도체 부족 현상이 발생한 이후 미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정책에 미국 국내 반도체 제조 시설 확충이 추가됐다. 반도체 제조 시설 확충을 위해 조 바이든 정부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등에도 미국 기업과 차별 없이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은 지금 미국에 공장을 한창 건설 중이다.

그런데 트럼프 1기 정부에 이어 2기 정부에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더 강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과 차별 없는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바이든 정부의 정책이 트럼프 2기에서 그대로 이행될지 불투명해졌다.

이런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은 대미 투자에 대해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재편 움직임에 동참해서 미국에 공장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에 투자를 더 늘려야 하기에 반도체 보조금을 확실하게 받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한국 정부와 기업의 협상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즉, 트럼프 당선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기대하지 않고 한국의 메가 반도체 클러스터에 투자를 집중하는 방법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를 높이면 제조 공장이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반도체는 산업 구조상 단순히 관세 회피를 위해 미국에 공장을 지을 필요는 없다. 따라서 더는 미국에 공장을 늘리는 것이 상책이 아닐 수 있다. 그보다는 지금 경기도 용인 일대에 추진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하루라도 더 빨리 완성하는 것이 지름길일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이 반도체 공급 국가의 위상을 더 강화하면 대미 외교 협상력을 더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반도체 선진국들은 2021년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 이후 앞다퉈 반도체 산업 지원 관련 법을 제정하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는 혼돈기에 있다. 여기에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미국의 반도체 산업 정책 방향이 결코 한국에 유리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기업은 지금까지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도 잘 돌파해 왔기에 현명한 판단과 우수한 전략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KIET)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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