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동생으로 법무장관 지내
아들인 케네디 주니어는 트럼프 지지
‘케네디家는 민주당 편’ 강조하려는 듯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존 F 케네디(1917∼1963)의 동생이자 형 못지않게 유명했던 정치인 로버트 케네디(1925∼1968)에게 ‘대통령 자유 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이 추서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을 위한 경선 도중 암살당한 이후 56년 만이다. 자유 메달은 미국에서 군인 아닌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훈장에 해당한다.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로버트 케네디를 대신해 그의 딸 케리 케네디(65)에게 자유 메달을 전달했다. 바이든은 로버트 케네디가 법무부 장관과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점을 거론하며 “장관으로선 미국의 인종차별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고, 의원 시절엔 미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로 수상 사유를 밝혔다. 이어 “로버트 케네디의 유산은 정의, 평등, 공공 서비스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영감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버트 케네디는 대통령이던 형이 충격적인 암살로 세상을 떠난 뒤 법무장관을 그만두고 정계에 뛰어들어 1964년 뉴욕주(州)를 대표하는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968년 대선 출마를 노리고 후보자 선출을 위한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그 또한 암살로 43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후 미 정가에는 ‘케네디가(家)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났다.
바이든이 퇴임을 보름가량 앞두고 로버트 케네디를 자유 메달 수훈자로 선정한 배경이 눈길을 끈다. 고인의 아들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케네디 주니어)가 곧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70세인 케네디 주니어는 지난 대선 당시 민주·공화 양당이 아닌 제3의 독자 후보로 출마하려다가 막판에 트럼프의 권유를 받고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당선 이후 트럼프는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케네디가 구성원들은 오랜 전통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사실상 케네디 주니어 혼자 트럼프와 공화당 편에 선 셈이다. 그 때문에 케네디 주니어는 형제자매는 물론 일가 친척들로부터도 “가문의 수치이자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었다.
따라서 바이든이 로버트 케네디에게 자유 메달을 추서한 것은 ‘케네디 가문의 정통성은 민주당에 있다’라는 점을 확실히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의 측근이 되길 자처한 케네디 주니어는 가문의 전통을 저버린 ‘이단아’에 불과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날 고인을 대신해 훈장을 받은 케리 케네디는 지난 대선 당시 해리스 지지를 선언하고 케네디 주니어의 트럼프 캠프행(行)을 비판하는 가족 명의 성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편 바이든은 로버트 케네디와 더불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 영장류 연구자 제인 구달 박사, 농구 선수 매직 존슨,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 영화배우 덴젤 워싱턴과 마이클 J 폭스, 패션 디자이너 랄프 로렌, 투자자 조지 소로스 등에게도 자유 메달을 수여했다. 바이든은 오는 20일 4년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날 예정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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