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라인 즐기던 윤 전 대통령

2025-04-24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때 포토라인을 즐겼다. 20대 대통령 취임 초기까진 분명히 그랬다. 심지어 ‘도어스테핑’을 자청했다.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이 진행됐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의 갈등 끝에 6개월 만에 중단하면서 포토라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경찰과 함께 윤 전 대통령을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해 압송하던 지난 1월 15일 경기도 과천청사 앞에 포토라인을 마련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이 뒷문으로 들어가면서 취재진의 문답은 무산됐다. 윤 전 대통령은 영상으로 입장을 밝히는 특이한 방식을 택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공수처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는데도 제대로 조사를 받지 않았다. 공수처에 체포된 날 조사실 테이블에 앉긴 했으나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후에도 병원 진료 등을 이유로 공수처 수사진을 헤매게 했다. 검찰 역시 조사 한 번 하지 못하고 윤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겼다. 내란죄 수사를 하면서 정작 우두머리 혐의자에겐 변변한 진술도 못 들었다.

취임 초기엔 도어스테핑 자청해

계엄 이후 언론 질문 원천 봉쇄

검·경·공수처 출석도 이럴 건가

윤 전 대통령은 앞으로도 조사를 계속 회피할 수 있을까. 현직 대통령 신분일 때는 내란과 외환 이외의 범죄는 수사가 불가능했지만, 파면된 이후엔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모든 범죄 혐의가 수사 대상이다. 검찰·경찰·공수처가 일제히 윤 전 대통령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란 관련 사항은 이미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에 추가 조사가 어렵다. 검찰이 수사해 온 명태균씨 사건과 관련해 윤 전 대통령이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관여한 듯한 전화통화 음성이 공개된 상태다. 거기에 무속인 건진법사가 윤 전 대통령 취임 사흘 뒤 발권된 신권 5000만원을 보관해 온 사실이 드러나는 등 새로운 의혹이 꼬리를 문다.

공수처는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를 진행한다. 군 수사에 윤 전 대통령이 개입했는지가 관심이다. 특히 공수처가 출국금지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한 경위가 의문으로 남아 있다. 경찰은 체포 방해 혐의 수사로 윤 전 대통령을 압박한다. 김성훈 경호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경호처의 압수수색 저지 상황이 반복돼도 경찰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강제수사를 시도했다.

수사 기관마다 각종 의혹 파일을 흔들고 있으니 윤 전 대통령 소환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세 기관이 경쟁적으로 조사에 나설 경우 윤 전 대통령은 경기도 과천과 서울 서초동 등지를 오가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겪었던 상황과 흡사하다. 이 후보는 성남FC 후원금 사건으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불려갔고, 대북송금 의혹 조사는 수원지검에서 받았다. 대장동 사건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되는 등 검찰청사 여기저기로 불려다녔다.

공수처 소환에 불응한 현직 시절처럼 대응하다간 다시 체포될 가능성이 있다.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한남동 대통령 관저는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경호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섰지만, 서초동 사저는 경호원이 저지할 명분도 없다”고 설명한다. 수사기관에 출석할 때마다 포토라인을 우회한다면 다른 전직 대통령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터다.

윤 전 대통령은 스스로 결백을 주장하는 만큼 청사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고 수사기관의 조사에도 성실히 응하는 편이 낫다. 계엄 사태 이후 그를 대변해 온 석동현 변호사는 2022년 대선 직전 윤 전 대통령의 장점을 “삼국지의 관우처럼 굵고 너그러운 인성과 소통 능력”(『그래도, 윤석열』)이라고 소개했다. 그런 면모를 보고 싶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국 포토라인에 서고, 경찰관과 공수처 검사의 신문에 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형사처벌이 관심인 수사기관과 달리 국민은 자신이 믿고 표를 준 대통령이 왜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특수부대 병력을 보냈는지, 관저 앞에서 탄핵을 반대한 사람들 이외의 국민에겐 미안한 마음이 없는지, 그런 얘기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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