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번호 42번 램리서치의 '몰리브덴', 삼성·SK 1000단 낸드의 필승조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2025-02-22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낸드플래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낸드는 전자 기기의 전원이 꺼져도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반도체입니다. D램이 책을 펼쳐놓고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이라면, 낸드플래시는 다양한 자료를 보관해두는 수납장 역할을 하죠.

정보를 많이 저장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수납장을 높게 쌓아서 더 많은 저장공간을 확보하면 됩니다.

요즘 화두가 되는 '1000단 낸드'도 비슷합니다. AI 시대 진입으로 데이터가 넘치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0단을 넘어 1000단까지 쌓은 낸드를 만들어보는 것을 꿈꿉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미국의 램리서치라는 장비 회사가 삼성·SK의 꿈을 든든히 뒷받침하기 위해 '몰리브덴'이라는 소재를 들고 나온 내용과 의미를 뜯어보겠습니다.

고적층 낸드 분야에서 슬럼프에 빠진 텅스텐

몰리브덴으로 만든 낸드가 독자분들께 어떤 가치를 주는지 한마디로 요약드리면요. 낸드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고용량이 되면서 AI가 여러분들 앞으로 더 가까이 올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낸드플래시 제조 공정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①먼저 정보를 저장하는 공간인 셀 기초 공사를 합니다. 질화막(나이트라이드) 층, 셀 사이 칸막이 역할을 하는 산화막 층이 한 세트가 돼 수직으로 쭉 올라갑니다. 삼성의 286단 낸드는 이 질화막+산화막 세트가 286단까지 올라갔다는 이야기입니다.

② 여기에 수억 개 채널 홀을 뚫습니다. 한번에 깊고 정교하게 뚫어야 좋습니다. 이 채널홀 안에 채널, 트랩층, 산화막(옥사이드) 층을 차근차근 채웁니다.

③ 채널홀 공정이 끝나면 홀 옆에 도랑을 파서 질화막을 걷어냅니다.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전압을 거는 구간인 ‘워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밑작업니다. 걷어낸 자리에는 전기가 잘 통하는 오늘의 주인공 '텅스텐'을 채워넣습니다.

④ 게이트 모양으로 예쁘게 깎아내서 개별 셀을 완성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③번 공정입니다. 원자번호 74번 텅스텐의 자리를 원자번호 42번, 몰리브덴 선수가 대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항 값, 고적층 두 개 키워드만 잡고 따라오시면 재밌고 쉽습니다.

이 투수 교체를 해낼 수 있는 장비를 세계 최초 개발한 램리서치의 설명에 따르면, 텅스텐만으로 1000단 낸드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낸드를 더 많은 단으로 쌓으려면, 텅스텐+산화막 층이 더 얇아져야 합니다. 높이 쌓는 건 누구나 있지만, 사람들은 반도체 칩의 크기가 커지기를 원하지 않죠. 얇으면서 높게 쌓아야 합니다. 300단 낸드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통상 텅스텐 한 층의 두께는 6~10㎚ 수준으로 결판이 나야 합니다. 1000단 낸드면 이 두께는 더더욱 얇아져야 하겠죠.

그런데 텅스텐은 말이죠. 막이 얇아질수록 저항 값이 급격하게 커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치 동맥경화 같달까요? 회로가 널럴할 때는 전자들이 텅스텐 혈관 위를 쌩쌩 잘 달렸지만요. 회로가 점점 얇아지면서 텅스텐 특유의 기질 때문에 전자들이 목표 지점으로 제시간에 뛰어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거죠.

더군다나 텅스텐은 또 다른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텅스텐을 채울 때에는 그냥 이것만 달랑 채우지 않습니다. '배리어 금속(barrier metal·질화티타늄·TiN)'이란 얇은 막을 먼저 바르고 텅스텐을 채웁니다. 마치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가드 레일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걸 왜 세우느냐면 말이죠. 아래 화학식을 봅시다.

WF6(육불화텅스텐)+3H2 → 텅스텐(W) + 6HF

③번 공정에서 텅스텐을 만들어내려면 육불화텅스텐과 수소의 화학적 결합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 텅스텐이 만들고 나면 불화수소(HF)라는 부산물이 함께 생기는데요.

이 HF가 또 문젭니다. 낸드의 경우 텅스텐 위아래로 산화막이 있습니다. HF를 배리어 금속 없이 방치하면, 얘가 산화막과 엉겨붙어서 원치 않는 심각한 불량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금속 가드레일을 쳐서 HF가 바깥 쪽으로 못 도망가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금속 가드레일은 얇은 배로 회선에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텅스텐 층의 두께 증가에 영향을 주면서 낸드를 높이 쌓는데 도움이 별로 안된다 △텅스텐을 100% 채울 수 없다 보니 워드라인 자체의 속도에도 크게 보탬이 안된다 △배리어 금속마저도 저항값에 악영향을 준다 정도로 정리되는데요. 한마디로 엔지니어들 속이 타들어가는 거죠.

‘필승조’ 몰리브덴…

그래서 램리서치는 미세 회로 1부리그에서 힘겨워하는 74번 텅스텐을 마운드에서 내리고 42번 구원투수 몰리브덴을 올립니다.

이제 이 텅스텐+배리어 금속 층은 몰리브덴으로만 100% 채워집니다. 인테그리스나 독일 화학회사 머크가 만드는 '몰리브덴 디클로라이드 디옥사이드(MoO2Cl2)'라는 물질(전구체·프리커서)을 증착 과정에서 반응시킬 확률이 굉장히 높은데요.

몰리브덴은 점점 두께가 축소되는 회로에서 텅스텐+배리어 금속층보다 장점이 많습니다. 램리서치는 동일 조건에서 저항값이 50%나 감소한다고 주장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좁은 회로에서도 멘탈이 좋은 ‘돌부처’ 투수인 셈이죠.

또 한가지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 배리어 금속 없이 100% 텅스텐으로 채웠을 때와, 100% 몰리브덴으로 채웠을 때의 성능 차이입니다. 최근 TSMC가 2나노 공정 논문을 통해 배리어 금속 없는 100% 텅스텐 배선을 구현한 점을 소개한 것에서 천착했는데요.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램리서치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박태순 램리서치 KTC 수석 디렉터는 이 질문에 대해 "그렇게 놓고 봐도 몰리브덴이 좋다"였습니다.

박 디렉터는 일반적으로 금속 안에서 전자가 얼마나 잘 이동하는지를 비교할 때 '자유평균경로(mean free path·MFP)'와 '벌크 비저항(Bulk Resistivity)'를 곱한 값을 본다고 설명했는데요.

이 값을 보면 텅스텐보다 몰리브덴 자체가 미세 회로 내부를 채우기가 훨씬 더 낫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실제 챗GPT가 제시한 값을 봐도 금속 특성에 따른 벌크 비저항은 비등하지만 MFP에서 몰리브덴이 월등히 우수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몰리브덴이 텅스텐보다 금속 내 불순물 등이 적은 매끈한 금속이기 때문에, 회로 폭을 줄이더라도 전자 알갱이들이 장애물과의 충돌이 적으니 목표 지점으로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게다가 몰리브덴엔 배리어 금속이 없으니까 좋은 점이 많습니다. 또한 배리어 금속 때문에 발생하던 저항값도 덜할 것이고요, 배리어 금속 면적을 아낄 수 있는 만큼 동일 면적에 단수를 더 올릴 수 있습니다.

낸드 제조사 입장에서는 '꿀'입니다. 낸드 업계에서 몰리브덴은 혁신 수준의 공정 변화고 상당한 화제가 됐다고 합니다.

램리서치는 '알투스 할로(ALTUS Halo)'라는 몰리브덴 증착 장비를 세계에서 최초로 만들어서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낸드 공정에 도입했다고 공식화했습니다. 낸드 업계 1·2위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서도 당연히 검토하겠죠.

카이한 에쉬티아니 램리서치 부사장은 "이미 생산 단계에 이 장비를 활용하는 고객사에 한국 고객사가 당연히 속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를 시사하는 메시지일 겁니다.

물론 유망주인 만큼 몸값은 텅스텐보다 더 비쌀 듯 합니다. 램리서치 측은 "몰리브덴 전환으로 기존보다 설비투자(CAPEX)가 더 늘어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봐도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모든 텅스텐 배선 공정을 몰리브덴이 대체할 수도, 대체할 필요도 없습니다. 램리서치가 노리는 곳은 '하이엔드 테크'입니다. 회로가 얇아지면서 저항값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국소적이지만 아주 중요한 미세 회로 영역을 핀셋 공략할 것으로 보입니다.

초고적층 낸드를 시작으로 2나노 이하 시스템 반도체의 초미세회로 배선→D램 회로 순으로 몰리브덴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낸드 업계와 램리서치의 혁신 내용은 여기까지 전해드립니다. 기나긴 테크 고개를 넘으시느라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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