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 등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이름을 알린 이노디자인의 김영세(75) 회장이 이번에는 1인용 골프 카트 ‘이노 F1’을 선보였다. ‘F1’은 자동차 경주가 아니라 ‘한 명을 위한’(For One)이라는 의미다.
김 회장의 골프 관련 디자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세계 최초 하드케이스 캐디백 ‘프로텍’을 개발했다. 로열티 수익으로 사옥을 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프로텍으로 1991년 권위 있는 디자인상 IDEA 동상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그의 또 다른 작품이 영국의 유명 디자인지 표지를 장식했다.
실패도 있었다. 양쪽 어깨에 멜 수 있는 캐디백을 디자인했지만, 다른 곳에서 먼저 출시해 무산됐다. 특허를 내지 않아 아이디어를 도용당했다고 생각한다.


김 회장은 30년 전부터 1인승 골프 카트 시대를 예견했다. 코로나19 시기 사람들이 혼자 카트를 타는데 익숙해지자 “때가 왔다”고 확신했고, 2023년 첫 제품을 출시해 미국 시장에 내놨다. 이제는 한국 시장을 바라본다.
그는 “카트를 혼자 타면 자유로워지고, 라운드 시간이 짧아지며, 골퍼의 멋과 개성이 살아난다”고 말한다. 그는 “F1 덕분에 아내가 행복해졌다”는 지인의 말을 전했다. 라운드 시간이 한 시간 가량 줄어 집에 일찍 돌아가니 가족이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는 1인 카트는 걸림돌도 있다. 산악 지형이 많은 골프장의 안전 문제, 페어웨이 진입 허용 여부, 1인당으로 계산해 4인승 카트에 비해 비싼 가격, 그리고 캐디 일자리 감소 우려 등이다.

무엇보다 카트에 함께 앉아 대화하고 ‘뽑기 내기’를 하는 한국의 골프 문화가 큰 장벽이다. 김 회장은 “좁은 카트에 끼어 앉아 다섯 시간 동안 내기를 하는 모습을 미국인이 보면 코미디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친교를 중시하는 ‘비즈니스 골프’보다 골프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골프에 집중할 수 있는 1인용 카트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여러 명이 타는 카트는 한 홀에서 네댓 번 멈춰야 하지만, 1인승은 두세 번이면 충분하다. 라운드 시간이 단축되고, 골프장은 20%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어 그린피를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세상을 떠난 가수 김민기와 경기고·서울대 미대 동문인 그는, 함께 밴드 ‘도비두’를 만들며 우정을 쌓았다. 김 회장은 “민기는 마음이 따뜻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 했고, 나는 디자인과 솔루션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고 에너지가 넘쳤다. 김 회장은 “기억력은 여전하고 시력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 최근 책 두 권을 휴대폰으로 썼다. 운동을 거의 안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기 때문에 건강하다”라고 했다.
김 회장은 디자인을 ‘일’로 보지 않는다. “휴가 안 가냐는 질문에 딸이 ‘아빠는 일한 적이 없다. 항상 휴가 중’이라고 말할 정도다”라며 웃었다. 그는 “70대 중반이지만 아직도 내일이 더 좋을 것이라 믿는다. 피카소가 그림을, 비틀스가 음악을 남겼듯, 나도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듯 디자인해야 슈퍼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