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첨단산업 분야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톱티어 비자’ 등을 도입했으나 국내 연구 환경은 외국인들에게 지극히 폐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 장벽과 직급 제한 등 구조적 제약 탓에 국책 연구 과제의 책임연구자(PI)로 외국인이 참여하는 사례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7일 법무부와 학계에 따르면 한국연구재단 등 정부 기관이 주관하는 국책 연구 과제에서 외국인 연구자가 PI로 선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식적으로는 국적 제한 없이 사업별 자격 요건만 충족하면 외국인도 참여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정교수나 부교수급 이상의 정규직 내국인 교수가 PI를 맡는 게 관행이다. 정부의 비자 완화가 인재 유치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민간뿐 아니라 국책 영역에서도 문호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국연구재단 지침을 보면 국책 연구에서 PI의 직급이 가장 높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비정규직 외국인 연구자의 참여 기회는 제한적이다.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외국인 연구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사례가 매우 드문 만큼 외국인이 PI로 선정될 가능성이 원천 차단되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내국인 비정규직도 PI 선정이 어렵지만 외국인 비정규직 연구자는 아예 기회조차 없다”고 말했다.
언어 장벽 역시 외국인 연구자의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큰 장애물이다. 이공계 외국인 연구자의 상당수는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데 연구비 신청과 심사, 보고서 제출, 정산 등 모든 행정절차가 한국어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영어 기반의 행정 지원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외국인 연구자는 동료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업무조차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무환 전 포항공대(포스텍) 총장은 “이공계 외국인 인재가 국내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실질적인 언어 지원 체계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며 “한국어 교육 확대뿐만 아니라 연구 행정 과정에서 영어 사용 비중을 높이고 영어 논문 평가 시스템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원화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외국인 연구자가 PI로 선정되는 경우도 있다”며 “불이익이 없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현재 영어 지원 강화를 위해 홈페이지를 개편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