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지칭하는 영어 evil을 거꾸로 하면 live, 삶이다. ‘영어 철자처럼 악은 우리 삶을 거스르는, 삶의 생명력을 파괴하는 과정이다’라는 조크를 대중에게 알린 사람은 정신과 의사 스콧펙이었다. 스콧펙은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역작에서 ‘악의 심리학’에 관해 기술했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악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대다수 악한들은 자신이 악한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진료나 검사를 받지 않고, 또 연구의 대상이기를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스콧펙은 악한 사람들의 행동 특징을 자신의 임상 사례를 통해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은 특징들로 정리를 했다.
첫째,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악을 볼 수 없고, 감내할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악을 저지를 수 있다. 둘째, 악한 사람들은 책임 전가의 달인들이다. 악한 행동을 저지르고 어떻게 해서든 남 탓을 한다. 악이 자행되는 이유는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해서이다. 셋째, 악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미워할 수 없고, 자신에게 과오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을 피해자, 희생자로 여기지 가해자라는 생각은 일절 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적반하장에 기겁을 한다. 넷째, 악한 사람들은 일을 그르쳐 놓고도 잘했다고 우겨대는 사람들이다. 음모론을 짜내고 황당한 프레임으로 사람들을 호도하려고 한다. 다섯째, 악한 사람들은 공감능력 결핍으로 악한 행동으로 인해 생긴 고통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잔치와 연회를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끝으로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악함을 위장하는 데 능숙해서 처음부터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누가 악한이고 악한은 어디에 있는가?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악한들이 가장 위장하기 좋은 곳이 종교집단이고 그래서 종교집단에 악한이 많다고 했다. 정신분석가 마이클 아이건은 위장된 악한들이 몰려 있는 집단으로 정치인 집단을 들었다. 그는 부시와 트럼프 등 미국 대통령들이 사이코패스 속성이 강하다며, 사이코패스들의 정치 속에서 죄책감이 사라진 시대를 맞이했다고 개탄한 바 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도 악한들의 도발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악한들은 책임을 회피하며 부정선거 음모론과 함께 관심을 호도할 프레임을 찾고, 진실을 감추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면서 계엄 트라우마가 망각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계엄 트라우마는 실패한 내란 범죄로 기억에 선연히 남을 것이다. 또 이번 사태의 초점이 흐려지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그럴 일도 없을 것이다. 영상은 생생하게 그날의 일을 전하고 있고, 발표되는 수사결과들은 명료하게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악한들의 수법대로 물타기를 하며 뒤를 봐주는 언론에 호소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만행을 보았고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은 상태다.
실패했으므로 쿠데타가 아니고, 한 명도 죽지 않은 내란이 어딨냐는 궤변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악한들이 있나보다. 실패한 쿠데타도 쿠데타다. 살인미수가 범죄이듯이. 총든 군인을 국회에 보냈으나 실패했고, 내란을 모의하고 기획했다는 것들이 실토되었다. 만일 성공했다면, 정치인들은 구금되고, 전공의는 처단되었으며 국민들의 자유는 금지되었을 것이다. 도사, 법사, 데이터 조작가, 일부 종교인들은 한탕으로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고속도로를 휘게 하고, 주식을 조작하고, 부동산 수익을 위한 금긋기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이코패스가 의심되는 어느 정치인은 불안감을 호소하는 초보 정치인에게 ‘국민들은 1년 뒤에는 기억도 못하는 존재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위로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악에 대해 깨달을수록 현명하게 행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