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은 절대 굴복 안 해” 항전 의지
언론·민간까지 합세해 결의 다져
양국과 밀접한 경제관계 맺은 韓
신중한 외교전략 더욱 절실한 때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엑스(X·옛 트위터)에 “우리는 중국인이고, 우리는 도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물러서지 않는다”는 글과 함께 1953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연설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 마오쩌둥은 “이 전쟁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른다. 언제 끝날지는 우리가 아닌 그들(미국)이 정할 것”이라며 “우리는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최근 진행 중인 미·중 관세 전쟁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내비친 셈이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보면 썩 유쾌한 영상은 아니다. 마오쩌둥이 언급한 ‘이 전쟁’은 6·25전쟁이기 때문이다.
마오 대변인은 이외에도 소셜미디어에 “14억 중국인의 자국 이익 수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라”, “그 어떤 위협도 중국의 결의를 흔들 수 없다. 우리는 굳건하고 단결하며 깨지지 않을 것” 등의 표현을 연일 게시하며 항전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단순한 외교 수사를 넘어 민간 여론에 반미 정서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이에 발맞춰 민간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후베이성 우한의 한 식당은 최근 “미국 국적 손님은 추가 서비스 요금 104%를 내라. 이해가 안 되면 미국대사관에 가서 따지라”라는 안내문을 내걸었다. 안내문 게재 시점으로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율과 동일한 수치를 요금으로 매긴 것이다. 더우인(중국판 틱톡)에서는 한 자영업자가 “손해를 보더라도 미국에 물건을 팔지 않겠다. 돈보다 애국심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 ‘애국 사업가’로 추앙받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이를 방관하는 것을 넘어 은근히 조장하는 분위기다. 마오 대변인의 게시물은 물론 관영매체들도 “중국은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조의 기사를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다. 여론을 주도하고 감정을 확대하는 데 정부와 언론이 일체가 돼 움직이는 모습이다.
중국에서 이런 조직적 반미 감정이 가능한 이유는 정치 체제에 있다. 중국에서 여론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설계되고 통제된다. 당이 주도하는 선전 시스템은 국민 감정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데 능하다. 앞서 한국을 상대로 시행됐던 ‘한한령’(한류 금지령)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한국 연예인 출연 금지, 한국 기업 불매 운동, 관광 제한 등이 ‘자발적’ 형태로 펼쳐졌지만 그 배후에는 체계적인 통제가 있었다. 물론 중국 당국은 “한한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관적인 반응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아직도 중국 본토에서 한국 국적 K(케이)팝 가수의 단독 공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폭싹 속았수다’ 같은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중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시청할 방법은 없다.
이번 관세 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다시 불이 붙었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해 최대 145%의 고율 관세를 예고하며 사실상 중국산 제품의 수입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트럼프 1기 때보다 훨씬 강도 높은 조치로, 봉쇄에 가까운 양상이다.
중국은 즉각적인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동시에 단순한 세율 보복을 넘어 희토류 수출 통제, 미국 군수기업 제재, 위안화 환율 개입 가능성 등까지 거론된다. 여기에 더해 당국은 민간 감정을 동원해 전면적 항미 전선을 형성하면서 관세 전쟁은 더 이상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한 정체성의 대결로 전환되고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할수록 한국의 고민은 깊어진다. 양국 모두와 밀접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은 어느 한쪽에 서는 것이 곧 다른 한쪽의 반발로 이어질 구조에 놓여 있다. 기술과 공급망, 수출 시장이 미·중에 걸쳐 있는 현실 속에서 한국은 선택을 유예할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정학적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위한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 경제적 의존도를 고려한 신중한 외교 전략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이우중 베이징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