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에 대한 의심

2025-12-26

지난 12월 16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이하 액션플랜)을 공개했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에 비해 의견 수렴 기간이 3주도 되지 않아 평범한 시민들이 중장기 정책 방향을 면밀히 살펴볼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다.

이번 액션플랜 중 핵심 문제는 ‘국가데이터 통합플랫폼을 통한 민간·공공 데이터 자산화’, 즉 시민들의 일상과 사회적 기록을 동의 없이 거대 자본과 국가권력의 자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일상과 공공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발생한 데이터는 본래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연관된 산물이지만, 정부는 이를 ‘이윤 증식을 위한 원재료’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면 데이터의 주체인 시민은 일상에 대한 권리를 잃고 ‘빅테크’ 성장을 위해 자원을 공급하는 연료로 전락한다.

가령 액션플랜은 보건의료 관련 공공데이터와 민간 의료데이터를 결합해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과 연계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그간 무수히 많은 국민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온 의료민영화를 노골화한다. 시민의 세금과 참여로 쌓인 공공 보건데이터를 ‘AI 학습용 원재료’로 정의하는 것은 시민의 건강권을 공익이 아닌 기업의 수익 창출을 위한 원료로 전환하는 추출의 전형이다. 결국 그 결과물이 될 ‘AI 진단 솔루션’이나 신약 개발의 이익은 빅테크와 제약 자본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 중 핵심 문제는 ‘국가데이터 통합플랫폼을 통한 민간·공공 데이터 자산화’, 즉 시민들의 일상과 사회적 기록을 동의 없이 거대 자본과 국가권력의 자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대량의 공공 데이터가 이윤 획득의 수단으로 활용되려면, 기계가 판독할 수 있는 수준으로 표준화돼야 한다. 한데 가공 과정에서 빅테크 자본에 의한 ‘분류의 정치’가 작동한다. 인간 사회의 맥락은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머신러닝을 위한 공정에선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소수의 목소리, 변칙적이고 복잡한 인류학적 의미는 삭제된다. 주류 집단의 편향이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부합하는 하나의 해결책을 추구하는 표준화는 주류적 시각을 ‘디폴트값’으로 설정하며, 이에 맞지 않는 인구 집단을 시스템 밖으로 밀어낸다.

정부는 공공과 민간의 데이터를 통합해 거대 IT 기업에 제공하는 것을 ‘민관 협력’이라 포장한다. 하지만 대체 어디에 ‘민’이 있나? 제국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길 원하는 국가와 이윤 증식의 새로운 경로를 만들고자 하는 자본 간 결탁일 뿐이다. 시민들은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가공되고, 다시 자신을 통제하는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의 후과는 신용평가나 채용 AI, 노동 통제를 위한 알고리즘 개발로 돌아올 것이다. 액션플랜이 내세우는 대책 역시 AI에 집중돼 있다. AI 역량 강화 교육을 시행하고,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AI 고용서비스’를 갖추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노동권 증진과도 거리가 멀다. 일자리 위기의 본질은 기술 때문이 아니라 경제 정체로 인한 노동수요 부족에 있으며, AI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없애리라는 말은 선후 관계가 뒤바뀐 협박이다. 산업 전반에 AI를 내재화하겠다는 계획이 성공하더라도 노동자의 숙련도를 기계로 이전시키고 자본의 통제권을 극대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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