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왕비 돌려달라”…다시 불붙은 유물 반환 논쟁

2025-12-29

이집트가 자랑하는 고대 유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불리는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을 고향으로 돌려달라는 요구가 다시 거세지고 있다. 최근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그동안 환수 요구를 가로막아 온 “보관할 곳이 없다”는 독일의 반박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등 해외매체는 이집트 카이로에 문을 연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이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 반환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며, 베를린에 있는 이 유물을 고향으로 돌려달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기원전 14세기, 신왕조 시대 파라오 아케나톤의 정실부인이었던 네페르티티는 단순한 왕비를 넘어선 존재였다. 공식 기록과 유물에서 그는 파라오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한 인물로 묘사된다. 독보적인 균형미와 당당한 시선을 담은 흉상은 고대 이집트 여성의 힘과 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이 흉상은 이집트 카이로가 아닌 독일 베를린에 있다. 1912년 독일인 고고학자 루트비히 보르하르트가 발굴한 뒤 독일로 옮겨졌고, 현재는 베를린 노이에스 박물관의 대표 전시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이 이동 과정이 과연 정당했느냐는 데 있다.

독일 측은 당시 국제 관행이던 ‘분배 발굴(partage)’ 제도에 따라 합법적으로 취득한 유물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발굴국과 발굴팀이 유물을 나눠 갖는 방식이었고,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집트의 입장은 다르다. 식민지 체제하에서 체결된 계약이 과연 공정했는지, 흉상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축소 보고해 반출을 유도한 정황은 없는지에 대해 오래전부터 의문을 제기해 왔다.

그동안 서구 박물관들이 내세운 가장 강력한 반론은 ‘보존 환경’이었다. 이집트에는 귀중한 유물을 안전하게 보관·전시할 시설이 부족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기자단을 초청해 공개된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은 이 주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최신 보존 기술과 전시 설비를 갖춘 대형 국립 박물관의 등장은 “이제는 돌아올 준비가 됐다”는 이집트의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이집트의 대표적 고고학자이자 전 유물부 장관인 자히 하와스는 외신 인터뷰에서 “네페르티티 흉상은 이집트 정체성의 일부”라며 “법적 논쟁을 넘어 도덕적 판단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이 흉상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라, 식민주의 시대에 유출된 문화유산을 되찾는 상징이다.

이 논쟁은 네페르티티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영국 박물관에 있는 로제타 스톤, 그리스의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 나이지리아의 베닌 청동기 등 서구 박물관들이 소장한 비서구권 유물 반환 요구는 최근 몇 년 새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누가 소유하느냐’보다 ‘어떻게 얻었느냐’를 묻는 흐름이다.

독일 박물관 측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흉상은 베를린 박물관의 상징적 전시물이고, 이동 자체가 유물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반환 요구가 정치적 압박으로 번질 경우, 다른 유물 논쟁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그럼에도 네페르티티 흉상 논쟁이 예전과 달라진 점은 분명하다. 이집트는 더 이상 ‘되돌려달라’고 호소하는 위치에만 있지 않다. 보존 능력과 전시 공간을 갖춘 국가로서, 문화유산의 귀속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식민주의 시대에 형성된 박물관 질서 전반을 다시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대박물관의 문이 열리면서, 네페르티티 왕비의 얼굴은 다시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됐다. 가장 아름다운 이집트 왕비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결국, 과거를 누가 소유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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