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근로자들, ‘참전국’ 독일의 발자취 찾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4-10-12

6·25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1953년 4월 독일(당시 서독)은 유엔군을 이끌던 미국에 “야전병원을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국토가 잿더미가 된 지 불과 8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전범’으로 규정된 독일은 유엔 회원국조차 아니었다. 그래도 콘라트 아데나워 당시 총리는 ‘독일이 훗날 자유 진영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6·52전쟁에서 뭔가 기여를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의료진 파견을 밀어붙였다. 다만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려 독일 의사와 간호사들이 부산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정전협정 체결로 포성이 멎어 있었다. 6·25전쟁 참전국 명단에서 독일이 오랫동안 제외돼 온 이유다.

독일 의료진은 정전 이듬해인 1954년 8월 부산에 ‘독일적십자병원’을 세웠다. 1959년 3월까지 약 5년간 활동하며 입원 환자 2만여명, 외래 환자 28만여명을 진료했다. 한국을 떠날 때 그들이 남긴 각종 장비와 약품은 우리 의학 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이같은 점을 감안해 한국 정부는 2018년 독일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인도와 더불어 ‘6·25전쟁 의료지원국’으로 인정했다. 이로써 유엔 참전국도 기존의 21개국에서 22개국으로 늘어났다. 전후 65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으니 만시지탄을 금할 수 없다.

지난 8월1일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 직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의 이행을 위해서다. 윤 대통령과 숄츠 총리는 독일이 유엔사 회원국으로 활동하는 데 뜻을 함께했다. 유엔사 회원국은 한반도에서 다시 6·25전쟁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신속히 병력과 장비를 한국으로 보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 그동안 국방 분야에서는 한국과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던 독일이 한국 안보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것이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독일의 유엔사 가입은 한반도 안정에 대한 독일의 의지를 보여주는 연대의 신호”라고 말했다.

사실 독일은 6·25전쟁 참전국 인정을 받고 유엔사에 가입하기 훨씬 전부터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다. 1960∼1970년대 광부와 간호사로 대표되는 파독 근로자들의 활약이 대표적이다. 지난 6일 사단법인 재독한인총연합회(회장 정성규)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눈길을 끈다. 이제는 고령이 된 파독 근로자들은 기념관 내 6·25전쟁 전사자 명비를 둘러보고 유엔 참전국 용사들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유엔실도 관람했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은 그들을 향해 “대한민국이 어려웠던 시기에 파독 근로자들의 땀과 눈물로 조국의 경제 발전과 근대화를 이뤄냈다”며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찬사를 바쳤다. 이제 독일은 경제를 넘어 안보 측면에서도 우리의 든든한 우방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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