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르면 10일(현지시간) 다수 국가를 상대로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트럼프 2기를 맞아 글로벌 관세전쟁이 '상호관세전' 양상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와 백악관에서 진행한 미·일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상호 관세'를 언급했다. 그는 백악관의 국빈 응접실인 옐로우 오벌룸(Yellow Oval Room)에서 이시바 총리와 회담하기 전 취재진이 "상호 교역(reciprocal trade)에 대한 행정명령에 오늘 서명할 것이냐"고 묻자 "다음 주에 발표할 것이며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문답에서 오간 표현은 관세가 아닌 교역이었지만, 미국 언론은 이를 '상호 관세'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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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상호 관세 발표가 "10일이나 11일에 이뤄질 것"이라고 시점을 특정했다. 다만 구체적인 대상국과 품목 등은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가 미국의 경제 파트너들과 무역 전쟁에서 중대한 확전 조치로 상호 관세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트럼프식 상호 관세'는 무역 상대국 간 동등한 세율의 관세를 매기는 조치와 함께 ▶미국의 무역적자 ▶특정 품목의 교역 불균형 ▶상대국 내부의 조세 제도 등까지도 다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일본산 쌀 등 농산물 관세 높일수도"
이와 관련,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트럼프식 상호 관세에 근거하면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농산물 관세를 높일 수 있다고 짚었다. 양국 간 관세는 2020년 1월 발효한 미·일 무역협정에 따라 줄어들거나 없어졌다. 하지만 일본산 쌀 등 일부 품목은 '성역'으로 남아 협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와사키 겐이치(川崎研一) 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가 미·일 실효관세율을 분석한 결과, 미국산 쌀과 육류는 상대적으로 일본이 수입할 때 관세가 높았다. 미국산 쌀이 일본으로 수출될 때 관세는 204.3%이지만, 일본산 쌀이 미국으로 수출될 때는 6.1%였다. 육류의 경우, 미국산이 일본에 수출될 때 관세는 23.3%이지만, 일본산이 미국으로 수출될 때는 4.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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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는 가와사키 교수의 발언 등을 인용해 "농산품의 관세 차이를 (트럼프가) 다른 품목의 관세를 끌어올려 채우려는 경우 그 영향을 피할 수 없다"며 "품목별 세율을 상대국의 수준에 맞추는 행위는 국제법상 인정된다"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가 그간 꾸준히 '관세폭탄'의 대상으로 지목해온 유럽연합(EU) 등은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트럼프는 앞서 취임일인 지난달 20일 EU를 겨냥해 "그들은 미국 자동차·농산물 등 거의 아무것도 수입하지 않는다"며 "미국은 EU에 약 3000억 달러(약 437조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EU가 우리 석유나 액화천연가스(LNG)를 더 구매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관세를 통해 그것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미 무역흑자가 큰 한국도 영향권이다. 지난 5일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660억 달러(약 96조 2100억원)로 9위였다. 대미 흑자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중국으로 2954억 달러였다. 이어 EU(2356억 달러)·멕시코(1718억 달러)·베트남(1235억 달러)·아일랜드(867억 달러)·독일(848억 달러)·대만(739억 달러)·일본(685억 달러) 등의 순이었다.
한·미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사실상 무관세로 무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번에 무역적자를 문제 삼아 미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상호 관세를 적용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 최대 15% 보복관세 시작한다
한편 중국은 10일부터 미국에 대해 최대 15%의 보복관세 부과를 시작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산 석탄·LNG 등에는 15% 관세를, 원유·농기계·대형자동차·픽업트럭 등에는 10% 관세를 더 물릴 예정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문제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부족하다며 지난 4일 오전 0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0% 추가 관세를 강행하자, 이에 중국는 맞대응 차원에서 보복관세를 선언했다.
일각에선 지난 6일간 미·중간 관세 유예를 위한 물밑 협상이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막판에 30일간 25% 관세 부과가 유예됐던 멕시코·캐나다와 달리 중국에 대해선 가시적인 협상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