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연말이 멀지 않았다.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 중에 ‘나홀로 집에’가 있다. 명절에 집에 홀로 남겨진 어린 소년이 집에 쳐들어온 악당을 재치있게 물리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집에 홀로 남은 두려움을 느껴봤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케빈의 무용담에 후련하고 용기백배 했으니 그토록 인기있는 영화가 되었으리라. 나 역시 어려서 종종 홀로 집을 지켰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아기돼지 삼형제’를 먼저 읽었다. 우리집은 풀집도 나무집도 아니었지만, 동화책 삽화에 그려진 붉은 벽돌집도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집이 무너질까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벽돌집이 튼튼하다는 건축자재 홍보보다는 아기돼지 삼형제가 ‘함께’ 모여 우리 집을 지어냈기에 늑대를 막아낼 수 있었다는 데 있다고 본다. 언젠가 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사춘기때 아버지를 따라 LA에 살았는데, 그때가 하필 1992년이었다. 폭도들은 후환이 두려워 무력을 중심으로 뭉친 일본인이나 중국인 사회는 못 건드리면서, 구심점이 없어 만만한 한인사회만 공격하더라는 것이다. 참상을 겪고 애국 갱스터를 꿈꾸던 치기어린 중학교 2학년 소년은 결국 커서는 선량하고 법을 잘 지키는 과학자가 되었지만 그러나 차라리 갱이라도 있었으면 지역사회를 지킬 수 있었으리란 자조적인 말 속의 뼈는 우리가 취할 가치가 있다.
봄에 발발된 의대정원 사태에서부터 이어진 갈등이 끝내 의사협회 내부의 불협화음까지 만들어내는 상황이 왔다. 당장 내 일이 아니어도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격론을 펼치는 이들마다 각자 주장의 타당한 이유나 논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이 너무 치열해져 도리어 내부 결속을 해치면, 정작 구성원을 보호할 수 있는 방어체계의 구심점을 잃고 만다. 정작 구성원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면, 그 논쟁의 의미는 무엇이며 협회가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염원하던 국립치의학연구원의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023년 1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보건의료기술진흥법이 통과된 후 예비 타당성 조사를 위해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 타당성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이는 치의신보 등에서 수차례 지적한 바와 같이 국내 치과의료시장이 커지고 치과산업이 경쟁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치과의사협회에서 수대의 집행부에 걸쳐 12년간의 법 통과 노력을 하여 정부가 그 필요성을 인정하였기에 얻은 결실이다.
설립 작업 본격화를 앞두고 협회에서도 관련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여러 지부에서는 해당 지역에 국립치의학연구원이 설립되어야 할 이유와 타당성을 홍보하며 자칫 유치 경쟁이 과열될 조짐마저 엿보이고 있다. 후보도시로 내세운 곳 모두 각자 장점과 특성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치과계가 워낙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다 보니, 그 어떤 지역이 되어도 우리나라 치의학을 대표할 수 있는 메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국립치의학연구원의 후보지를 선택하는 권한은 우리 협회나 회원들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다. 2025년 1월 24일부터 시행될 보건의료기술진흥법에 의거하여 정부에서 만든 사업단에서 시행할 일이다. 우리 회원끼리 투표를 하여 내부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협회 내에서 과도하게 경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대한치과의사협회의 기관지인 치의신보와 지면을 통해 각각 후보지의 특장점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면 좋겠다. 우리 치과의사 회원들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나 국립치의학연구원이 설립되는 의의와 앞으로의 기대효과를 우리 회원들이 이해하기 좋을 뿐 아니라 평가에 참여할 유관기관과 관심있는 국민들에게도 양질의 정보를 제공할 기회가 되리라 생각된다. 우리 회원들의 건강한 관심이 연구원 설립의 빌딩블록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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