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핵인싸: 건희주의를 말하다(a.k.a 건리주의)

2024-11-05

공리주의

요즘에야 쾌락이 선이고 고통이 악이라고 규정하지도, 이익이나 쾌락의 증대만을 행복으로 정의하지도 않지만 공리주의(功利主義)적인 정책의 필요성은 여기저기 남아있다. 다원화·다양화가 진행됨에 따라 개인의 고유성과 개별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다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라고 하는 공통점에서 비롯하는 몇 가지 속성을 우리가 공유하기 때문이다. 최대 다수의 행복이 증대되는 방향은 존재한다. 상호 합의가 가능하다면 더 나은 환경의 구축을 위해 공통점이 아닌 차이점에 대해서도 상호 보완적 이익의 증대는 가능하다. 개별 인간들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연구하면 할수록 구성원의 자유 증대를 위한 목적에서도 공리주의적 정책이 유효한 때가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하여 보통 논쟁이 생기는 정책들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집단의 이익을 좀 더 보호하는가'라는 지점이나, '특정 집단의 자유를 너무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부분에서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가끔 현 사회에서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떤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보다 나은 대답을 해 나가며 발전해 왔고 말이다. 그, 아니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

100년 전 괴승(怪僧) 라스푸틴

이런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비 피해로 사망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두고 '나 간다고 바뀌어?'라며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로 날아간다. 전쟁이 끝날지 여부도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에 재건사업 지원을 약속한다. 삼성전자·한국전력공사·포스코 등 쟁쟁한 기업과 함께 이름을 올린 자그마한 회사 S. 사단장의 무리한 잘 보이기식 요식행위 때문에 군부대에 입대한 젊은 청년이 사망한 사건의 내막이 드러나기 전까지 우린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다른 정부 기관들에 압력을 가하면서까지 보호 대상에 오른 사단장의 사적 골프모임에서 언급되는 S 기업의 이름. 언급한 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사건으로 징역을 구형받은 영부인의 '아는 오빠'. 상습 주가 조작범으로 의심되는 그의 S 기업 언급이 있었던 뒤 극적인 우크라이나 방문이 이루어지고 주가는 치솟는다.

출처-

각본도 이렇게 쓴다면 너무 인물이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라 욕을 먹는다. 너무나 범인일 거 같은 사람의 전형적인 범죄행위.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라는 것조차 사욕을 위해 활용하는 듯이 보이는 지경으로... 정부의 붕괴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하여 그(편의상 V2라 칭하자)의 행동을 예측하는 수많은 갑론을박이 정계와 언론에 돌았지만 제대로 예측한 경우는 전무했다. 대통령 배우자의 사적인 이익추구를 목표로 정부 일체가 움직일 거라고 누가 예측하겠는가? 믿어줄 사람이 없을 테다. 공공연하게 떠들기엔 검찰권을 남용하는 대통령실이 무서워 말이나 할 수 있었겠나 싶고...

현대사회의 일반적인 정치, 사회 담론과 현저히 어긋나는 이 정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했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도, 은퇴하는 기시다가 내한하는 장소에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난다는 톈굥이라는 자다.

믿음과 추종으로 엮여있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라는 세뇌와 따르면 다 되더라 식의 자기강화를 통해 관계를 강화하고 세력을 늘리는 사이비 종교식의 상호작용에서, 교주 측이 한 말이 신도들의 수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교주의 예측이 맞았다!"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용산 이전, 외교 정책, 석유 탐사 등 도저히 알 수 없는 일들을 선지해 낸다. 그의 라스푸틴적 예지능력을 현시대에도 믿는 순진한 이성이 남았으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부정부패 무능으로 헌법에도 그 추방을 위한 4·19혁명의 정신을 기록해 놓은 이승만 따위의 기념관을 짓겠다는 시대에선 확신하기 어렵다(그리고리 라스푸틴[1872~1916]: 괴승[怪僧]. '비선실세'로 국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 제정 러시아의 몰락을 가져온 인물).

생전 라스푸틴과 처형 후 그의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2024년 김건희

그럼, 작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무엇을 위해서 움직이는가. 이 부분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부가 하는 일들은 법령으로, 정책으로 변화되어 서로 다른 영향력의 크기와 발효시점과 유효기간을 가지고 복잡하게 얽혀있다. 전 정부가 잘못한 것들이 그 정부의 기간이 끝나자마자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잘하려고 진행한 일이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나타내지도 않는 법이기에 더욱 혼란하다. 오늘날 삶에서 느껴지는 것만으로 정부의 잘함과 못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추론이라 하겠다. 평가기준과 변인의 직접적 상관관계가 약하기 때문이다. 시간상으로 뒤틀려 있기도 하고.

하여 우리의 체감이나 감정을 내려놓고 논리적으로 이전 정부와 지금 정부와는 어떤 점에서 이질적인 형태로 힘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원인들 위주로 나열해 놓고 전반적인 힘의 왜곡이 통계적으로 무엇을 위해(무엇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나은 추론일 테다.

여기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사건들의 목록이다.

- V1의 땅이 있는 쪽으로 고속도로를 휘게 만들었던, 양평 고속도로 게이트.

- V1이 자신의 장기를 살려 돈을 벌어들인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그것을 최대한 지연 수사, 출장 수사 후 무혐의를 선언한 V1 비호 사건.

- 채상병 사건에서의 임성근 비호(여러 가능성 중 주가조작 해주는 오빠의 친한 사람인 것이 핵심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있다. 다른 사건들로 미루어 짐작하였을 때).

- 권력을 이용, V1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돈벌이 방법을 사용한 삼부토건 주가 조작 사건.

- 명태균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

- 영적으로 세상을 보는 V1의 마음과 한때 잘 맞았던 것으로 보이는 톈굥이나, 산 소(living cow)의 껍질을 벗겼다는 작자의 굿판 사건.

출처-<굿모닝충청>

처음 한두 사건을 바라볼 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각 사건들의 특수성에 '설마 이렇게까지 한다고?'라는 감정이 더해져서 혼란이 가중됐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사건도 많았고. 그러나 한데 모아 보니 무엇이 보이는가? 개별 사건들에서는 흐릿하게 보이던 윤곽들이 자꾸자꾸 쌓이며 한 사람의 얼굴이 명확히 드러나는 포토 모자이크 작품을 보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건희가 믿는 것, 건희가 바라는 것, 건희가 좋아하는 것이 투명하게 비춰 보인다. 디올, 조그만 손가방으로 열리는 건희의 세계...

(힘이 느껴지십니까?)

출처-<대통령실>

건리주의

2021년의 12월. 윤석열을 지지한다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방패 삼아 휘두르는 이를 만났다. 애초에 맘에 들지도 않는 정당이 급조해서 대선에 내보내는 꼬락서니가 의심쩍어 보이던 때기에 한 마디 지껄여 주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기 멋대로 하겠다는 루이 14세 같은 맘일 수도 있는 것 아냐?"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 자리다. 국가 전반을 아우르는 철학과, 그 철학을 기반으로 뭉친 사람들(정당 혹은 다수 인재의 유기적 조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편이기에, 정치 경험이 단 한 차례도 없는 사람이 대선에 출마한다는 사실에 심사가 뒤틀려 한 말이었다. 그 말이 들어맞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자기 부인된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만한 입장이 안 돼'는 정도로 여왕님을 모시는 가신처럼 쩔쩔매는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니...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충성할 수 있단 말일까..."

오죽하면 직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심이 되어 찍혀야 할 사진에서 건희주의 작풍을 표방하던 사진작가가 기업 사장으로 영전하는 세상이다. 건리주의. 어쩌다 나라의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선 (건리를 알기 위해) 김건희라는 인간의 삶을 되짚어 보는 것이 필요한 세상이 되어 버렸을까. 사족. 공교롭게도 공리주의와 이득(利得)의 리(이)는 같은 한자로 쓴다.

출처-<한겨레>

글을 나가며

얼마 전 유시민 작가가 칼럼을 썼다(<김건희는 증상일 뿐, 병의 뿌리는 윤석열>(시민언론 민들레 2024.09.30). 일련의 사건을 일으킨 근원에는 '권력의 공백'을 초래한 윤이 있고, 김건희는 현상일 뿐이라는 말에 동감했다. 건희를 떼어낸다고 해도 문제는 지속될 것이라는 식견은 탁월했다. 현 사태를 가장 잘 압축한 말이리라. 자책하며 현상에나 주목해 건리주의나 비난할 생각뿐인 글을 지워버리려다 떠올랐다. 잉크방울이 물에 떨어지듯 어떤 현상은 깊게 스며들어 서로를 변화시키고 나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 둘 다가 진실일 수 있다. 권력의 공백을 타고, 권력의 환심을 사고 여러 인간군상이 기어 나오고 있지만, 건희를 V2로부터 온전히 떼어낼 수 있는 다른 현상이 가능할까?

오늘도 귓가에, 검찰이 주가조작 불기소 강행하는 소리가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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