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80주년 ‘2025 현재사’를 알아야 할 이유

2025-03-19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 /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심훈 ‘그날이 오면’ 중)

이렇게도 간절했던, 그토록 기다리던 해방의 그날, 그리고 80년. 2025년 8월15일 우리는 해방 80주년을 맞는다. 연초부터 1년 내내 전국 곳곳에서 성대한 축하행사가 펼쳐져야 마땅할 역사적인 해이다. 그런데 지금 우린 어떤가. 12·3 내란 사태 이후 국정은 거의 멈췄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고 해방의 감격을 되새기긴커녕 사회 갈등의 골이 깊어져, 서로에게 퍼붓는 날선 말들로 포연·먼지가 자욱하다. 정서적 내전 상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현재 국민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는 불신과 갈등의 늪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3일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갈등 정도는 4점 만점에 3.04점으로 나타났다. 1년 새 0.09점이 급상승한 것으로, 해당 항목 조사가 시작된 6년래 최고점이다. 가장 심각하게 느낀 갈등 유형은 3.52점을 기록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었다. 세대, 젠더, 빈부 갈등보다 높았다. 보고서는 지난해 6~9월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4 사회통합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사회를 양극단으로 몰고 가는 갈등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역사 인식의 서로 다른 기준이다.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현재에 대한 이해를 만들었듯, 현재 어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역사에 대한 다른 기준, 다른 토대에 서 있는 이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는 오는 27일 해방 80주년 기획 <12·3 이후, 쟁점으로 보는 ‘2025 현재사’> 시리즈 강좌를 시작한다. 해방 이후의 8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80년을 그려야 할 이때 기본적인 역사 인식부터 달라 민주주의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등장할 때마다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을 들여다보고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함께 공유해야 할 지점을 찾으려 한다. 건국절 논란부터 5·18과 역사부정의 문제, 한일협정과 과거 청산, 산업화와 민주화, ‘친일’과 ‘반공’의 역사 프레임 전쟁, 남북관계와 평화까지. 하나하나가 간단치 않은 주제다.

너무나 뻔뻔하게,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2016년 ‘탈진실(post-truth)’이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것이 10년이 다 돼간다. 그러나 아무리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탈진실 사회라지만, 명백한 역사적 사실마저 흔드는 것은 심각하다. 언제부터인가 5·18을 북한 소행이라 하고,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이었다고 버젓이 주장하는 등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부정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론이 있을 경우 학계의 연구를 바탕으로 토론하면서 사실을 검증하는 것이 정석인데, 정치권이 앞장서 “편향됐다” “바로잡겠다”고 역사학계 대다수에 색깔론을 씌우며 역사 문제가 사회 갈등의 발화점이 됐다. 사실 자체의 진위를 다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역사적 논쟁들이 어떤 목적, 어떤 맥락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차분히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첫 순서는 <12·3과 ‘지금·여기’의 민주주의>다. 전체 강좌의 도입부 성격으로, 우리가 지금 어떤 역사적 바탕 위에서, 어떤 민주주의의 상황에 발 딛고 서 있는지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한다.

민주주의는 데모스(demos)의 권력(kratos), 즉 민중의 지배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 민주주의에서 결정적인 것은, 민중의 통치 역량이다. 탈진실과 양극단의 시대, 역사부정까지 횡행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현재의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불안과 혐오를 조장하고 이용하려는 세력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80년, 민주주의를 지켜가기 위한 최소한의 발판, 공통감각의 회복을 위해, 역사부정과 탈진실을 가볍게 함께 뛰어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25 현재사’ 시민강좌를 기획했다. 많은 시민이 참여해 역사적 사실들 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넓은 시야로 조망하고, 저마다의 질문들을 가져와 토론하며 공동체가 갈 길을 함께 찾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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