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김삼의당 여류시인

2025-03-05

지난 2월달 칼럼에서 ‘남원을 문화의 도시로 만들자’에 이어 남원이 낳은 조선시대 여류시인 김삼의당은 누구인가. 김삼의당은 1769년(영조45)년 김해김씨 탁영(濯纓)김일손(金馹孫)의 후손 김인혁(金仁赫)의 딸로 남원부 서봉방(유천마을)에서 출생하여 18세 되던 해,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에서 출생한 담락당(湛樂堂) 하립과 혼인하였는데, 하립은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인 하경천(河經天) 의 아들로 비록 가세는 기을었지만 시아버지를 비롯해 다섯 형제가 모두 시문에 능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립과 김삼의당 부부는 입신양명하여 두 집안의 가세를 회복하고, 부모님께 영화를 보여 드리기 위해 과거시험 합격을 목표로 삼아 신혼생활을 꿈꿀 겨를도 없이 이별과 별거를 15년 하며 학업에 정진하였으나 과환(科宦)의 뜻은 이루지 못했다.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한 결과 어렵던 생활은 더 어려워져 갔지만 낙방 소식을 전해들은 김삼의당은 뒷바라지를 위해 머리를 자르고 비녀를 파는등 전력을 하였다. 편지에는 ‘당신의 과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소임입니다. 올 가을에 경시(慶試)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 같은 아녀자에게 마음쓰지 마세요, 꼭 합격하여 큰 꿈을 펼치시고, 우리 임금을 요순(堯舜)처럼 훌륭하게 만드세요’ 라며 간절한 마음을 전하였으나 끝내 부부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256년 전, 하립과 김삼의당은 혼인식을 하였다. 두 사람은 문학적 재능으로 첫날밤 신랑이 먼저 시를 읇었다. “우리 둘이 만났으니 광한루 신선인가/이 밤에 만남은 분명 옛 인연을 이음이오/배필은 원래 하늘이 정한다고 하니/세상의 중매란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오/부부간의 도리는 인륜의 시작으로/온갖 복이 여기서 비롯한다 하오/시험삼아 <시경> 도요편 살펴보니 /집안의 화목이 당신 손에 달렸다오”. 그러자 신부가 아미(蛾眉)를 살짝올리며 시로 화답한다. “열여덟 살 신랑과 열여덟 살 새색시가/동방화촉 밝히니 좋은 인연이네요/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 한 동네에서 살았으니/이 밤의 우리 만남 어찌 우연이겠어요/부부의 만남에서 백성이 생겨나며/군자의 도리도 여기에서 시작된다지요/공경하고 순종함이 아내의 도리이니/이 몸 다하도록 당신 뜻 어기지 않겠어요”. 이렇게 시를 나누며 첫날밤을 보낸 신랑은 신부의 방벽에다 그림과 글씨를 가득 붙여놓고, 정원에는 여러 가지 꽃을 심은 다음 아내의 방문앞에 ‘삼의당(三宜堂)’ 이란 당호(堂號)를 걸어주었다. 뜻은 ‘집안을 화순하게 한다는 의미다’.

김삼의당은 시문집으로 99편 264수의 시와 22편의 산문이 있다. 조선시대에 여류작가는 신사임당(1504-1551),송덕봉(1521-1578),허난설헌(1563-1589)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삼의당(1769-1823)작품도 손색이 업으며 작품 수에서는 압도적이다. 그동안 조명을 받지 못한 이유로는 가세가 회복되지 못하고 기울어졌던게 원이이라 할 수 있다. 신사임당은 율곡이이가, 허난설헌은 교산허균, 송덕봉은 미암유희춘 같은 걸출한 배경과 후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0년도부터 남원김삼의당 기념 사업회를 추진해 오신 분들께 존경심을 표한다. 2020년에는 사단법인 김삼의당 기념사업회도 발족하였다하니, 문학을 통하여 남원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하리라고 본다.

오동근 재경남원문인협회 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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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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