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한복판에서 한겨울 설원이 펼쳐진다. 송파구 올림픽파크텔 지하 1층, 거대한 360도 LED 스크린 앞에 선 바이애슬론 선수가 롤러 블레이드를 신고 설원을 내달린다. 발 아래에는 가로 2m, 세로 3m 크기 특수 제작된 트레드밀이 굴러간다. 실제 경기장 경사와 지형이 그대로 반영된 가상공간 위에서 선수는 실전 주법을 익힌다.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2023년 한국스포츠과학원이 구축한 ‘스포츠 XR 메타스페이스’다. XR(확장현실) 기술을 활용한 이 훈련 시스템은 360° LED 파노라마와 LED 플로어, 특수 트레드밀, 실시간 생체 정보 측정 장비가 결합된 국내 유일의 고급 훈련 인프라다. 제작비가 30억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다. 단순한 영상 체험을 넘어, 실제 경기장과 90% 이상 싱크로율을 갖춘 코스를 구현해낸다. 선수 몸에는 반사 마커가 부착되고, 13대 적외선 카메라가 모든 움직임을 실시간 추적한다. 이는 동작 분석을 통해 보폭, 착지 시간, 이동 속도 등의 세부 기술 향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심박수, 젖산 농도, 최대산소섭취량(VO₂맥스) 등 객관적인 생리적 지표도 동시에 측정된다. 단순히 ‘땀 흘리는 훈련’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 과학훈련이 이뤄지는 셈이다.

트레드밀은 최대 시속 40㎞, 경사도 20도까지 구현할 수 있다. 오르막 훈련을 하는데 아주 적합하다. 날씨, 기온, 지형을 모두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 실제 경기 전 코스 적응에도 유용하다. 2023년 한 해에만 323차례나 활용됐다. 주로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 선수들이 사용했으나, 루지와 스키점프 등 타 종목 선수들도 입소문을 듣고 찾기 시작했다. 종목, 연령대, 장애유무에 상관없이 다양한 선수들이 이곳에서 기량을 다듬고 있다. 이전에는 선수들이 여름철 무더위 속 아스팔트에서 훈련을 감행해야 했고, 이는 부상과 기술 저하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곤 했다.

이곳 연간 유지비는 약 4억 원이다. 정부는 2028년까지 운영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이후 이 시설을 계속 서울에 남겨둘지, 평창에 건립 예정인 동계과학훈련센터로 이전할지를 두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동계훈련센터는 2030년 이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에 있으면 더 많은 선수들, 특히 경기 지역에 많이 거주하는 학생 선수들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린 선수들일수록 훈련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다. 물론 평창으로 이동하면 국가대표가 사용하는 데는 잇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외 다른 선수들이 사용하기에는 거리상 부담감이 생긴다. 기기 관리와 업그레이드, 긴급상황 대처 등에 대한 운영비 또한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전하는데만 10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한국스포츠과학원 길세기 박사는 “스포츠 XR 메타스페이스는 공간 자체가 목적이 아닌, 선수 기량 향상의 수단이다. 현재 서울에서의 사용 빈도와 효과를 볼 때, 수도권 접근성이 갖는 장점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길 박사는 “평창으로 이전한다면 시설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조건과 환경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며 “단순히 시설만 옮기는 식으로 접근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