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말 나오는 신촌, 서울시는 90년대에 이미 예견했다

2025-03-08

사람들은 왜 이제 신촌에 가지 않을까.

요즘은 이 물음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한때 ‘신촌을 못가’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신촌은 헤어진 연인과 마주칠까봐 ‘못 가’는 곳이 아니라 연인과 함께하더라도 ‘안 가’는 곳이 됐기 때문이다. 신촌은 연세대·이화여대 등 5개 대학이 가까운 서울의 명실상부 대표 대학가였는데, 지금은 대학생들이 눈길도 주지 않는 상권이 된 것만 같다. 유튜브에서는 ‘신촌은 왜 망했을까?’ 같은 영상이 수십만 조회 수를 올린다. 그런 영상은 마치 오래된 폐가를 탐험하는 듯한 시선으로 텅 빈 신촌 상가를 보여준다. 현재 신촌의 이미지가 딱 이 정도인 셈이다.

신촌을 찾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최근 행정당국은 그 이유를 ‘교통’ 문제라고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정책이 신촌의 침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연세로는 연세대 앞에서 신촌로터리까지 500m가량 뻗은 길로, 서울시가 2014년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했다. 평상시에는 버스와 운송차량, 택시(심야)만 다니게 하면서 차로를 절반으로 줄이고 그만큼 보도를 넓혔다. 나중에는 아예 보행전용지구로 전환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2022년 지방선거에서 ‘연세로 전면통행으로 신촌 상권 부활’이라는 공약이 나왔다. 적잖은 신촌 상인들이 연세로 차량 통행을 막아 상권이 죽었다고 주장하며, 대중교통전용지구가 아니라 차량 이용을 수월하게 할 더 많은 주차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1월1일, 서울시는 결국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해제했다. ‘노 카(No Car)’ 정책이 신촌을 쇠퇴시켰다고 본 것이다. 정말 그럴까.

10년 동안 유지된 대중교통전용지구가 신촌에 끼친 영향은 검증해볼 만하다. 그런데 서울을 거시적으로 볼 때, 신촌의 추락은 대중교통전용지구와 상관없이 훨씬 전부터 예견됐던 바다. 서울시가 10~20년 후 미래 구상을 담기에 부동산 투자에 관심 많은 이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서울도시기본계획(서울플랜)’에 그 단서가 담겨 있다.

1990년 수립한 ‘서울플랜 2000’을 보면, 당시 서울시는 광화문 일대를 유일한 도심으로 두고, 신촌을 비롯해 영등포·영동(강남)·잠실·청량리를 부도심으로 육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1997년 ‘서울플랜 2011’에서는 이미 서울 서북권의 부도심을 수색으로 재설정하고, 신촌은 도심·부도심 하위인 지역중심으로 떨어트렸다. 이 위상은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통일 후 북한 지역으로의 연결성을 고려해 수색이 뜨고, 홍대입구·합정 등 다른 교통 중심지의 등장으로 신촌이 가라앉으면서 생긴 일이다. 어떻게 보면, 신촌의 상대적 쇠락은 행정이 의도한 측면도 있는 셈이다.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 전부터 신촌을 찾는 사람은 이미 확연히 줄고 있었다. 이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의 하루 평균 승하차 인원은 2023년 7만4872명이다. 2013년엔 11만448명, 2003년엔 12만3816명이었다. 20년 사이 약 5만명이 빠지면서, 서울교통공사 산하 역사 전부를 놓고 볼 때 4위에서 17위로 미끄러졌다. 일반 차량 통행을 막고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했는데, 오히려 대중교통 이용객이 대폭 빠졌다. 신촌을 오가거나 거쳐가는 사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2014년 연세대 송도캠퍼스가 문을 열면서 대학생 유동인구가 대거 줄어든 영향도 크다. 신촌 상권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이 사건은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과 같은 해 일어났다는 점에서 참으로 공교롭다. 결론적으로, 신촌 쇠퇴의 책임을 대중교통전용지구 하나에 묻는 건 지나치다. 그렇게 단정하기엔 신촌을 둘러싼 광역적 변화가 너무 컸다.

물론, 신촌의 내부적 동인을 강조하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신촌의 ‘다양성’이 죽었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보인다. 예전에는 신촌에서 록카페, 다방, 향음악사처럼 다양한 공간을 만날 수 있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먹고 마시는 주점 일색이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한마디로 상권으로서 매력을 잃었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점은 신촌 일대 주점도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2002년 426개→2012년 300개→2022년 167개·통계청 통계지리정보서비스에서 이 기간 유지된 7개 집계구 대상)이다. 생태계와 같이 상권에서도 다양성이 사라지면, 그 다양성을 억누른 존재들까지 종국에는 다 같이 죽는 경우가 많다. 이 변화가 다양성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광역적 변화의 풍파를 세게 맞은 신촌에서 생존을 위한 지역적 변화의 몸부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폐지는 무척 아쉬운 일이다. 현재의 신촌이 다른 상권과 비교해 특출난 매력이 없다면서도, 그나마 지녔던 차별화된 경관을 없애고 어디서나 볼 법한 그저 그런 거리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상인들도 경험적으로 안다. 보행자가 더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거리가 영업에도 더 유리하다. 차량이 거리 한가운데를 가르지 않고 거리 양쪽을 사람들이 오갈 때 상점 문을 두드릴 잠재적 손님의 수가 더 많아진다. 차 없는 거리가 사람을 불러모으는 이벤트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걷기 좋은 연세로’는 다양성을 위한 인프라가 될 수 있었다.

당장은 신촌 상권 전체가 고통스러운 변화 과정을 겪으며 탓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것이 애꿎은 대중교통전용지구가 됐는지도 모른다. 11년 전 대중교통전용지구 지정을 성급하게 밀어붙인 후과일 수도 있다. 당시 공론화나 도로 공사 등 모든 절차가 1년 만에 끝나면서 이해당사자들이 사업을 충분히 이해하고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연세로에 즐비했던 노점상을 철거하면서 진통이 컸던 이유다. 공공 주도 사업은 종종 이런 속도전을 벌이곤 하는데, 당시 ‘시민의 시장’을 내세웠던 서울시의 기조에는 특히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었다.

연세로가 언젠가 보행자를 위한 거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만약 비슷한 실험을 또 시작한다면, 그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면 좋겠다. 연세로와 달리 민간 참여를 유도하면서, 또 점진적인 방식으로 보행친화적 환경 구축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뉴욕 타임스스퀘어는 그런 측면에서 많은 사람이 잘 알지만, 동시에 잘 모르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타임스스퀘어는 뉴욕시가 보행 환경 개선에 나서기 전 혼돈 그 자체인 곳이었다. 맨해튼 특유의 격자형 도로 체계에 속하는 7번가와 브로드웨이가 ‘X’자를 그리며 교차하는 사이사이에 보도가 마치 섬처럼 잘게 흩어져 있었고, 보행자는 쉴 새 없이 흐르는 차량의 물결을 의식하며 섬과 섬 사이를 위태롭게 건너다녀야 했다. 뉴욕시는 2000년대 중반 단계적으로 타임스스퀘어를 보행전용 광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테이블, 의자, 파라솔, 화분 등을 배치해 한시적으로 차량 통행을 막는 수준이었다. 광장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유지·관리하는 일에는 지역 상권을 끌어들였다. 예산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시민 동의를 차차 얻어가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며 교통사고 감소, 광장 이용자 증가 등 효과를 증명한 끝에 약 10년 만에 타임스스퀘어는 차량 통행을 영구적으로 금지한 광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보행자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은 이처럼 의식적이고 꾸준한 노력과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당국의 굳건한 의지와 민간 참여 없이는 어렵다. 20세기 초 자가용 차의 대중화 이래 도로 체계가 차에 유리하도록 구축된 건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다. 보행자를 위한 장소로 거듭나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한번 정착하면 제법 독특한 인프라가 된다. 지금은 몰락한 신촌에서 연세로의 실패는 그래서 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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