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사건은 단연 강남발 집값 상승이다. 선호 지역의 주택 공급 부족으로 강남쪽은 들썩인다고 하지만 시야를 전국으로 넓히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경기 침체 여파로 전국적으로 공급이 넘쳐나 미분양은 상당하다.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를 직매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할 정도다. 건설업계에서는 정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그림자’ 미분양도 상당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2년 반 전 ‘270만호 공급’을 발표했지만 공사비 급등 등의 영향으로 계획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 여파가 터져나오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주택 공급을 계획할 때 단기적 시각에서 벗어나 장기적 시각으로 실현 가능하도록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석열 정부의 2년 반 기간의 분양 정책을 돌아봤다.
‘규제 풀어 270만호’ 얘기했지만
미분양 주택이 넘치는데 왜 ‘공급 부족’을 걱정하는 걸까. 핵심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큰 지역을 한 데 뭉뚱그려 살펴서는 주택 수요를 예측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정이 다르고, 같은 서울 안에서도 선호 지역과 비선호 지역이 나뉜다.
이에 더해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으로 명명된 새 아파트 선호 경향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말은 ‘선호 지역에 들어갈 데가 없다’ 혹은 ‘선호 지역 아파트가 너무 비싸다’는 뜻이 됐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출범하면서 이 문제를 ‘시장에 맡겨 해결하겠다’는 기조였다. 각종 규제를 풀어주면 건설사들이 앞다퉈 선호 지역에 아파트를 지을 것이고, 이들 지역에 공급이 늘면 집값도 잡힐 것이라고 본 것이다.
2022년 8월 정부는 ‘윤 대통령 임기 내에 주택 270만가구를 공급한다’는 내용의 ‘국민 주거 안정 실현 방안(8·16 대책)’을 내놓았다. 서울 주택 공급 목표량을 문재인 정부 실적(32만가구)보다 50% 이상 늘려 50만가구로 잡았고, 수도권 전체 공급 목표량도 지난 5년 대비 29만가구 증가한 158만가구까지 끌어 올렸다.
세부 방안은 ‘규제 완화’가 주를 이뤘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개편해 부과금 부담을 낮추고, 재건축 사업 주요 절차인 안전진단 문턱을 낮추는 등이다.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선호도 높은 도심에서 양질의 주택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며 재개발·재건축 등을 전폭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시점에 주택 시장은 이미 정점(2021년 10월)을 찍고 활기가 떨어지는 중이었다. 대책이 나온 바로 다음 달에 ‘레고랜드’ 사태가 터졌다.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건설업체들이 갚지 못한 빚이 쌓여 ‘금융위기’ 위험까지 감지됐다.
위기 상황에서 투자가 줄고 대출도 조이자 기업들은 줄줄이 사업을 멈추거나 접었다. 설상가상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다. 건설사와 입주 예정자들이 가격에 합의를 못 해 공사가 중단되거나 입주를 미루는 일까지 잦아졌다.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지난해 8월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아파트를 짓는 방안을 추가로 내놨다. 이른바 ‘8·8 대책’이다.

‘270만 가구 공급’ 발표로부터 2년 반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결과는 처참하다. 주택 공급과 수요의 ‘미스매치’를 드러내는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국토부가 발표한 ‘1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7만가구를 훌쩍 넘는다. 다 짓고도 팔지 못한 ‘악성 미분양’도 2만2872가구에 이른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2013년 10월(2만3306가구)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업계에선 미분양 주택의 실제 규모가 11만에 이른다는 말이 떠돈다. 정부의 집계는 건설사의 자진 신고를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신고되지 않은 ‘그림자’ 미분양도 상당할 거라고 보는 것이다.
미분양 사업장에 돈이 ‘물린’ 건설사는 다른 사업을 벌일 여력이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 2월19일 악성 미분양 주택 3000가구를 직접 사들이는 내용의 ‘지역 건설경기 보완 방안’을 발표하면서, “지방 미분양 문제가 수도권 공급에 지장을 준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선 실제로 올해부터 새 아파트 공급이 급감한다. 지난 1일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는 올해 수도권 아파트 공급이 민간과 공공을 다 합쳐도 8만3485가구에 그친다는 추산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해(13만 4140가구)와 비교해 38% 감소한 수치다. 특히 서울 분양 물량은 1만2628가구로 지난해(2만8219)의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올해는 예정됐던 분양도 계속 밀리고 있다. 지난 5일 부동산플랫폼 직방이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월1일부터 2월27일까지 분양 예정이던 총 2만5789가구 중 54.1%(1만2970)만 실제 분양에 들어갔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건설사들이 분양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

토지주택연구원은 올해 초 “공급부족이 현실화해 시장 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파트 건설은 인허가 시점으로부터 입주자가 실제로 거주하게 되기까지 적어도 2~3년이 걸리는데, 지난 2023년에 주택 건설 인허가와 준공이 급감한 탓에 올해와 내년부터 공급 부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택 정책은 그 영향이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만큼, 정부가 단기 목표치에 치중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현 정부가 주택 공급을 이유로 풀어제낀 규제들을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며 “기존에 계획한 주택 건설도 경기 상황 때문에 추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그린벨트 해제 등을 발표한 것은 특히 큰 실책”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주택 공급 목표를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다시 정리하고 ‘진짜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