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대신 정리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이별, 눅눅하게 남아 있는 슬픔, 곪아 터지듯 번지는 우울함. 카더가든과 오존은 그런 감정의 잔재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걸 음악이라는 언어로, ‘처리’해준다.
두 사람은 이미 2021년 <긴 겨울>을 통해 상실과 그리움이 머무는 계절의 정서를 공유한 바 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이번 EP
“음악이 감정을 낫게 해주는 건 아니에요. 다만 위로받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죠.” 카더가든의 이 말은, 그들의 작업 방식과 태도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툭 던진 가사 한 줄, 아무렇지 않게 시작된 멜로디가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 다시 함께 했다. 그들이 제안하는 감정의 처리 방식은, 역시나 음악이다.

카더가든의 아우터는 보디. 티셔츠, 팬츠, 풋웨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존의 후디 집업, 티셔츠는 겐조. 베스트는 언더커버. 데님 팬츠는 스티치 컴스 블루. 네크리스와 풋웨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두 분이 처음 만났던 날, 기억나시나요?
오존: 아마도 서울의 어느 지하 공연장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첫 솔로 공연이라 긴장도 많이 했고, 형은 이미 그 당시 잘 알려진 소울 싱어였기 때문에… 솔직히 말도 못 걸었어요. 그냥 멀리서만 봤던 기억이 나요.
4년 전 함께했던 유튜브 콘텐츠, ‘오래된 정원’도 두 분의 관계를 잘 보여준 프로젝트였죠.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로서, 음악 외적으로도 서로 닮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카더가든: 글쎄요… 사실 친구들이 겹치는 거 말고는, 생각보다 비슷한 부분은 잘 못 느꼈어요. 성격도, 생활 패턴도 워낙 달라서요. 그래서 더 흥미로운 관계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이번 협업은 누구의 제안으로 시작된 건가요? 단순 피처링이 아닌 공동 앨범이라는 결정을 한 배경도 궁금합니다.
오존: 정원이 형이 먼저 제안해줬어요. 지금이 둘이서 무언가를 해보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아서, 자연스럽게 작업이 시작됐어요.
카더가든: 언젠가 둘이서 음반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막연하게 나눴었어요. 그게 딱 올해, 2025년 이었던 것 같아요. 이전에 했던 유튜브 ‘카더정원’ 콘텐츠를 통해 우리 둘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한몫 했고요.

‘오3더가든’ 계정도 인상 깊었어요. ‘감정 처리반’이라는 콘셉트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요?
카더가든: 회사 내부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둘 다 딱히 거부감도 없고 괜찮다고 느껴져서 그냥 그대로 밀고 나갔던 것 같아요.
‘감정 처리반’ 이름이 왜 ‘TWO(T.W.O)’인지도 궁금해요.
오존: 앨범 제목에서 따온 거예요. 사실 저희는 그냥 음악만 만들었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재치 있게 잘 포장해주신 거죠. 보통 제목이나 주제는 직관적으로 뽑는 걸 좋아하거든요.
팬들이 직접 전화를 통해 감정에 참여하는 방식은 꽤 실험적이었는데요. 직접 멘트를 녹음해보니 어떠셨어요?
카더가든: 재밌었어요. 옛날에 콜센터에서 일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고… 오랜만에 그때 감정으로 돌아간 느낌도 나고요.

좌절, 미련, 외로움, 공허함, 용기, 그리움… 트랙마다 연결된 감정 키워드를 보면, ‘행복‘이나 ‘설렘‘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빠져 있더라고요. 의도된 설정이었나요?
오존: 제가 평소에 밝은 노래를 많이 쓰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자연스럽게 지금의 감정 상태가 작업물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감정 처리반’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카더가든: ‘감정 처리반’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한다기보단, 앨범 그 자체의 메시지를 말하고 싶어요.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리스닝 앨범이 되길 바랐고, 동시에 두 사람의 색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다르게 느끼는 만큼, 듣는 사람들도 각자의 해석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이번 앨범을 하나의 감정으로 정의한다면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요?
오존: ‘이해’요.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주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됐거든요.

각자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프로젝트에 임했는지도 궁금해요.
오존: 딱히 큰 계획은 없었어요. 그냥 재밌는 걸 해보고 싶었고, 지금 이 시기의 우리를 자연스럽게 기록하듯 작업했어요.
작업 과정 중 가장 오래 붙잡고 고민했던 트랙은 무엇이었나요?
카더가든: ‘WORLD’라는 곡이요. 프로듀서 친구가 그 곡에 유독 애정을 많이 쏟았고, 고민도 깊었어요.
‘이건 혼자였으면 못 만들었겠다’ 싶은 순간도 분명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곡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오존: 앨범의 아웃트로 트랙이요. 지금의 제가 혼자 만들었다면 절대 이런 멜로디와 구성이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협업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조화라고 생각해요.

녹음 중 서로 디렉션을 주고받은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카더가든: 특별한 디렉션은 없었어요. 그냥 “잘 맞춰서 불러라” 정도였죠. 녹음도 꽤 매끄럽게 끝났고, 끝나고 같이 고기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게 더 인상 깊었네요 (웃음).
믹싱이나 마스터링 단계에서 두 분의 의견이 갈렸던 지점은 없었나요?
오존: 의외로 없었어요. 전체적으로 흐름이 아주 자연스러웠고, 후반 작업에선 큰 이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트랙 리스트는 어떤 기준으로 구성하셨나요? 흐름에서 중점 둔 포인트가 있다면요?
카더가든: 리듬감이나 악기 구성 같은 사운드의 결을 기준으로 정리한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는 프로듀서 친구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구성이었고요.

그럼 두 분은 요즘 감정 정리는 어떻게 하세요?
오존: 쉬는 날엔 정말 푹 자요. 그리고 짬 날 때마다 운동도 하고요. 그러다 뭔가 쌓인다 싶으면, 그걸 작업으로 풀어내는 편이에요.
이 앨범을 통해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다면요?
카더가든: 이 친구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혹시 함께한 다음 프로젝트도 염두에 두고 계신가요?
오존: 아직은 계획이 전혀 없어요. 저희 둘 다 뭔가를 철저히 계획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늘 그렇듯이 재미있는 일이 생길 수 있게 마음을 열어두고 있어요.
어색하겠지만 서로에게 한마디 해볼까요?
카더가든: 사람들과 자신,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음악을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