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일easy] 현대차-토요타, '동경'에서 '우정'으로

2024-11-28

모터스포츠 공동개최, 상대사 축하 신문광고 등 '끈끈한 모습'

30년 늦게 탄생한 현대차, 토요타의 품질 우선주의‧고급차 전략‧하이브리드 벤치마킹

지금은 동등한 위치에 선 협력 파트너…수소차‧로보틱스 등 협력관계 강화

산업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혹은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슈의 전후사정을 살펴봅니다. 특정 산업 분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나 소액주주, 혹은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들이 대신 공부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포지티브적 해석 : 토요타의 추종자에서 동등한 협력 파트너로 성장한 현대차의 위상.

#네거티브적 해석 : 일본 정치인들은 배신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던데, 기업인은 다르려나.

최근 한국과 일본의 대표 자동차 기업 현대자동차와 토요타자동차가 동종업계 경쟁사로서는 이례적으로 끈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닛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주니치신문 등 일본의 주요 일간지에는 특이한 전면 광고가 등장했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토요다 아키오 토요타 회장이 양사의 드라이버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배경으로 “정의선 회장과 현대자동차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한글 문구를 넣은 광고였습니다.

사실 축하를 받을 곳은 토요타였습니다. 광고가 등장하기 바로 전날인 24일까지 일본에서 열린 2024 WRC(World Rally Championship) 마지막 라운드에서 토요타가 제조사 부문 챔피언을 차지했거든요. 현대차는 드라이버 부문 챔피언을 가져갔지만, 아무래도 브랜드의 자랑거리가 되려면 제조사 부문 챔피언이 더 군침 도는 결과물이겠죠.

특히나 현대차는 WRC 2024시즌 마지막 13라운드인 ‘재팬랠리’ 개막 직전까지만 해도 제조사 부문 우승이 유력했습니다. 무려 토요타에 15점이나 앞서 있었습니다.

재팬랠리에서도 현대차의 드라이버들과 렐리카들은 선전했지만 마지막 날 현대 월드랠리팀의 오트 타낙 선수가 불의의 사고로 이탈하면서 토요타에 역전당했습니다. 하위 클래스인 WRC2 차와 충돌하며 발생한 사고였으니 현대 월드랠리팀으로서는 억울한 상황이었죠.

그 결과 최종 스코어는 토요타 561점, 현대차 558점, 단 3점 차이로 토요타가 제조사 부문 우승을 차지하게 된 겁니다.

토요타로서는 자동차 업계 후발주자이자,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는 한참 후배인 현대차에, 그것도 안방에서 통합 우승을 빼앗길 아찔한 순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광고 문구를 보면 토요타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인한 ‘쪼이는 맛’을 즐긴 것으로 보입니다. 토요타가 게재한 광고에는 “최종전의 재팬랠리까지 챔피언을 걸고 경쟁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팬 여러분도 재미있는 랠리를 보셨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승부를 합시다”라는 일본어 문구도 적혀 있었습니다.

정의선 회장과 현대차에게 축하를 보내는 이 광고는 아키오 회장의 특별 지시에 의해 집행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쟁사에 대한 ‘비방’이 아닌 ‘축하’ 광고라니, 이 남자들 조금 수상하죠?

두 사람, 그리고 두 회사의 수상한 관계는 한 달 전에도 포착됐었습니다. 지난달 27일 한국에서 ‘현대 N x 토요타 가주 레이싱 페스티벌’ 행사를 공동 개최하며 전세계 자동차 업계와 모터스포츠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왜 놀랄 일이냐고요? 완성차 업체간 각자의 시그니처 모터스포츠 행사를 통합해 치르는 일은 유례가 없었거든요. 사실 같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경쟁자끼리 그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기에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 상상했던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일을 현실로 만든 것은 정의선 회장과 아키오 회장이었습니다. 연초에 둘이 일본에서 만나 작당모의(?)를 했다는군요.

아마도 “당신 모터스포츠 좋아하지? 나 모터스포츠 광이야. 우리 둘 다 자동차 회사를 이끌고 있으니 같이 한번 뭉쳐 볼까?” “오케이 콜!” 이런 정도의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 자리에 참모진은 없었던 듯 합니다. 최고재무책임자(CFO)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같은 분들이 배석했었더라면 두 회사의 협업이 어느 쪽에 더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지, 괜히 돈 쓰고 남 좋은 일 시키는 건 아닌지 계산기를 두들겨 대고 “그걸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라는둥 고리타분한 잔소리를 해대며 뜯어 말렸을지도 모릅니다.

두 회사 잔소리꾼들은 정의선 회장과 아키오 회장 회동 이후 느닷없이 던져진 지시에 당황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판은 벌어졌습니다. 랠리나 레이싱 용으로 튜닝된 폼나는 경주용 차들을 비롯한 고성능 모델,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콘셉트 모델 등 현대차와 토요타의 기술력이 집약된 자동차들이 용인 스피드웨이를 장식했습니다.

국내 모터스포츠 마니아들은 열광하며 현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용인 스피드웨이를 운영하는 에버렌드가 소속된 삼성그룹의 총수 이재용 회장도 “우리 동네서 뭔일이지?” 하는 이웃 주민의 표정으로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날 아키오 회장은 정의선 회장을 태운 채 직접 WRC용 경주차인 'GR 야리스 랠리 1 하이브리드'를 몰고 드리프트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동승을 마치고 차에서 내린 정 회장은 “아키오 회장은 제가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회장님으로,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운전하시는 거 보니 더 많은 신뢰가 가고 역시 모든 걸 잘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당초 정 회장과 아키오 회장은 각자의 차를 몰고 관객들에게 드리프트 시범을 보일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운전 실력에서는 아직 젊은(?) 정 회장이 아키오 회장의 ‘짬’에는 못 미쳤던 것 같습니다.

정 회장은 “드리프트 연습을 몇 번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성공 못했습니다. 제가 (아키오 회장과 드리프트를) 같이 하려면 더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에 기회 될 때 여러분께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자, 그럼 이 두 회사가 핑크빛 무드를 선보이게 된 배경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사실 현대차는 업력에서 토요타의 상대가 되지 않는 후발주자입니다. 법인 설립 기준으로 계산하면 현대차가 1967년생, 토요타가 1937년생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한 세대쯤 되는 30년이나 차이가 나죠.

토요타는 아시아 자동차 역사의 개척자로 불릴 만한 업적을 이뤘습니다. 1958년 일찌감치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 야심차게 진출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순탄한 건 아니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아시아의 기업이, 그것도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기업이 자동차를 만들어 해외에 내다 판들 얼마나 팔렸겠습니까. 미국 진출 첫 해 판매량이 300대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업력이 좀 됐다 한들 1886년생인 메르세데스-벤츠나 1903년생인 포드와 비교하면 어린애 수준이었죠.

하지만 토요타는 포기하지 않고 미국 시장에 꾸준히 자동차를 내다 팔며 의외로 내구성이 좋다는 입소문과 함께 품질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던 중 발발한 1970년대 전세계 석유 파동은 토요타에게 큰 기회가 됩니다. 덩치 큰 고배기량의 ‘기름 먹는 하마’들이 배척당하는 가운데 토요타의 자동차가 상대적으로 연비가 좋고 가격이 저렴하며 잘 고장도 나지 않는, 불황에 특화된 대안으로 이름을 떨치며 판매에 날개를 달게 된 것이죠.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토요타는 급기야 2008년 세계 판매 1위 자동차 업체의 자리에 등극합니다.

물론 고난도 겪었습니다. 2009년 미국에서의 대량 리콜 사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악재를 잇달아 맞습니다. 세계 1위 자리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게 내줍니다. 하지만 토요타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2년여에 불과했습니다. 2012년 1분기 토요타는 다시 세계 1위 자리에 오릅니다.

이런 토요타는 오랜 기간 현대차의 롤모델이었습니다. 현대차의 기술적 스승은 미쓰비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현대차가 보고 배운 것은 토요타로부터가 더 많았습니다. 현대차가 2000년대 들어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로 이름을 떨치며 고성장을 구가한 것은 앞에서 뛰는 토요타의 속도가 무지막지하게 빨랐던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토요타보다 28년 늦은 1986년 포니엑셀을 앞세워 북미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도 초창기에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미국인들은 자동차 산업 변방인 한국 브랜드의 자동차를 대놓고 무시했고, 품질 면에서도 ‘굴러다니는 싸구려’라는 혹평을 던집니다.

이같은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던진 승부수는 ‘품질’이었습니다. 미국 진출 초기 부족한 브랜드 파워를 품질로 극복해낸 토요타와 같은 길을 걷게 된 셈입니다.

1999년 본격적으로 경영을 맡은 정몽구 명예회장은 생산 대수에만 몰입하던 현대차의 성장 전략을 ‘품질 제일주의’로 전면 전환합니다. 어느 정도 품질이 뒷받침되자 미국에서 워런티(제품 보증기간) ‘10년 10만마일 보장’이라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당시 통상적인 워런티가 ‘2년 2만4000마일’이었음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조건이었죠.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음을 강조하는 정책이었습니다.

그 결과 현대차는 2004년 미국 품질조사업체 JD파워의 초기품질조사(IQS)에서 쏘나타가 중형 세단 부문 1위를 기록하는 이변을 일으킵니다. JD파워는 1998년과 1999년 연속으로 현대차에 신차 품질조사 꼴찌의 불명예를 안겼던 업체입니다.

일각에선 토요타가 미국 소비자들에게 아시아 업체가 만든 자동차에 대한 선입견을 깨 주면서 현대차의 미국 진출을 한결 수월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차근차근 점유율을 키워 나가던 현대차는 어느덧 한계에 봉착하게 됩니다. 규모는 글로벌 상위 수준까지 키웠으나 여전히 ‘가성비 자동차’라는 인식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에쿠스, 제네시스(브랜드가 아닌 차명)를 아무리 크고 고급스럽게 만들어 봐야 대중차 브랜드를 달고 벤츠나 BMW, 아우디 같은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할 수는 없었죠.

앞서 현대차보다 먼저 이 고민을 했던 토요타는 렉서스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어냅니다. 1989년 본국인 일본보다 미국에서 먼저 론칭한 렉서스는 초기 상당한 고전을 했습니다. 벤츠‧ BMW‧아우디와 같은 ‘태생적’ 프리미엄 브랜드와 달리, 대중차 브랜드에서 분리돼 나온 프리미엄 브랜드는 렉서스가 처음이었거든요. ‘토요타보다 가격만 비싸지 좋은 게 뭐야?’라는 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10여년 간 꾸준히 품질 개선과 고급화, 브랜드마케팅에 매진한 결과 렉서스는 2000년대에 들어 시장에서 제대로 된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게 됩니다. 렉서스의 성공은 토요타 전체의 브랜드파워와 신뢰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26년 뒤인 2015년 현대차도 이 길을 따릅니다.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론칭한 것이죠. 아직 브랜드 파워와 시장 지배력 측면에서는 선배 프리미엄 브랜드들과 맞설 정도는 아니지만, 품질 면에서는 꾸준히 좋은 평가가 나오고 있어 렉서스보다는 빠른 시기에 시장 안착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인기가 높죠. 현대차는 그 수혜를 크게 가장 누리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업체는 토요타입니다.

토요타는 모두가 인정하는 하이브리드차의 선구자입니다. 1997년 도쿄 모터쇼에서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양산차 프리우스를 내놓은 게 그 시작입니다. 전기차 시대 개막을 한참 뒤의 일로 판단한 토요타는 각국의 강도 높은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과도기적 파워트레인으로 하이브리드를 지목했습니다.

이후 토요타는 대부분의 내연기관 모델에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갖추고 시장 개척에 나섭니다.

현대차도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의 기술적 완성과 양산차 출시는 토요타보다 늦었지만 일찌감치 하이브리드차 개발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1995년 제1회 서울모터쇼에서 프로 엑센트를 기반으로 제작한 첫 하이브리드 콘셉트카 FGV-1(Future Green Vehicle-1)을 선보인 게 시작점이었죠.

현대차는 토요타보다 10년 늦은 2009년 첫 하이브리드 양산차인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를 내놓습니다. 자체 기술로 설계하고 생산한 하이브리드차라는 상징성이 있었지만, 이 차는 사실 제대로 된 하이브리드차가 아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전기모터가 직접 차를 움직이는 ‘하드타입 하이브리드’가 아닌 모터가 엔진 구동을 보조하는 방식이었죠.

당시까지만 해도 하드타입 하이브리드는 토요타의 직병렬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유일했습니다. 물론 관련 특허를 잔뜩 출원해 놓았죠. 현대차가 이걸 따를 순 없었습니다.

이 때 토요타가 처음으로 현대차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이브리드 기술과 부품을 제공하겠다는(엄밀히 말하면 팔아먹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죠. 이걸 받아들였다면 양산이 한층 빨라졌겠지만 현대차는 거부합니다.

당시의 토요타의 제안은 동등한 협력관계가 아닌, 상하관계가 분명한 형태였습니다. 그걸 받아들였다면 현대차가 기술 종속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 현대차의 하이브리드차는 ‘토요타의 아류’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죠.

결국 현대차는 2011년 자체 기술로 개발한 병렬형 하드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TMED)을 장착한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내놓습니다. 이 차의 연비는 21.0km/ℓ로,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19.7km/ℓ)보다 높았습니다. 후발주자인 현대차가 선두 토요타를 따라잡았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죠.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 대비 획기적으로 높은 연비를 제공하는데다, 그만큼 배출가스도 적다는 확실한 이점이 있었지만, 가격이 비싼 게 단점이었죠. 제조사 입장에서는 각국의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늘리는 게 중요했지만, 그건 제조사 사정이지 소비자가 제조사 사정 봐주느라 돈을 더 제출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이브리드차 시장 성장은 더뎠고 홀로 시장을 개척하던 토요타에게는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했습니다.

자사의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게 괘씸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체 기술로 제대로 된 하이브리드차를 만들어 시장에 뛰어든 현대차의 존재가 토요타에게는 더없이 반가웠을 겁니다.

두 회사는 우선 시장부터 키워놓고 보자는 ‘암묵적 협력’ 그리고 ‘선의의 경쟁’ 과정을 거쳐 하이브리드차 시장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 둘이 나란히 지금의 하이브리드차 호황을 가장 크게 누리게 된 것이죠.

지금까지 토요타가 앞서고, 현대차가 따르는 구도를 살펴보면 간격이 조금씩 좁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설립 시기는 30년 차이가 났지만, 해외 진출 시기는 28년 차이, 고급차 브랜드 론칭 시기는 26년 차이로 점차 좁혀졌습니다. 그리고 하이브리드차 양산 시기는 10년 차이로 줄었죠.

현재 글로벌 자동차 판매 순위는 토요타는 1위, 현대차는 3위입니다. 이정도면 동등한 레벨에서 경쟁하는 관계로 봐도 무관하겠죠. 전기차만 놓고 보면 하이브리드에 올인하다시피 한 토요타를 현대차가 앞서고 있습니다.

자신을 벤치마킹하며 열심히 따라오다 어느 순간 비슷한 수준에 이른 상대를 보는 느낌은 어떨까요. 한편으로 경계심이 커지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대차와 토요타는 이례적으로 사이가 좋습니다. 정의선 회장과 아키오 회장의 브로맨스 때문일까요? 그럴리가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지점이 확실하기 때문이겠죠.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이미 합을 맞춰 본 현대차와 토요타는 이제 힘을 합쳐 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 시장을 개척해야 합니다. 이 분야에서는 기술 개발도, 양산도 현대차가 근소하게 앞섰습니다. 더 이상 한쪽이 다른 한쪽을 따르는 게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뛰는 사이란 얘기죠.

두 회사는 로보틱스를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산하에 두며 하드웨어쪽에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고, 토요타는 토요타리서치연구소(TRI)를 통해 인공지능(AI)을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토요타는 최근 양쪽의 장점을 합해 시너지를 내는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와 TRI의 거대행동모델(LBM)을 활용해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을 가속하는 방식이죠. 인간과 유사한 움직임을 구현하며, 양손의 세밀한 조작도 가능한 아틀라스와 토요타의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시켜 다양한 분야에 활용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탄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시장 패러다임 변화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릅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도태될 수 있습니다. 토요타와 현대차가 전세계 판매 1‧3위를 달리고 있다고 하지만 현재의 판매량과 벌어들이는 돈은 미래의 변화에 대응할 체력의 근간이 되지만 미래 자체를 보장해주지는 못합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부분이 있다면 함께 손잡고 미래에 대응하는 게 훨씬 든든하겠죠.

모터스포츠 행사 공동개최와 축하 광고와 같은 현대차와 토요타의 끈끈한 모습은 두 회사의 본격적인 협력 행보를 앞두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풀이됩니다.

아, 그리고 최소한 일본 기업인은 사도광산 사태와 같은 과거사 문제에서 약속을 저버리고 저열한 행태를 보이는 일본 정치인들과는 달리 신뢰를 지킬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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