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시대를 맞으면서 그동안 ‘성장 견인차’ 역할을 했던 수출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이미 중국은 물론 멕시코·캐나다 같은 동맹국에도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무관세 혜택을 기대하고 멕시코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초비상이다. 무역협회는 내년 수출 증가율이 1.8%에 그칠 것이라고 관측한다. 역시나, 관세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최근엔 미국 경기가 꺾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3대 투자자로 불리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누가 재무 장관이든 미국 경제가 조만간 하드랜딩(경착륙)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부채 증가가 위기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내수·수출 불확실성 커진 가운데
기업들, 새 인물로 진용 짜는 중
과감한 야성과 함께 교감도 필요
자영업자 폐업 100만 명으로 대변되는 내수 부진은 이미 오래된 뉴스다. 여기에다 수출 둔화가 겹치면서 향후 경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온통 잿빛이다. 한국은행은 28일 금리를 인하하면서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9%로 하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HSBC, 노무라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은 내년 한국 성장률을 1.7∼1.9%로 내다보고 있다.
잔뜩 먹구름이 몰려오는 가운데 기업 인사철이 돌아왔다. 주요 대기업의 선택은 ‘리스크 대응’으로 요약된다. 주력 계열사가 부진에 빠진 롯데 정도를 빼고는 간판 경영진의 교체는 거의 없었다. 승진 폭도 최소화하는 분위기다. 대신 위기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경험이 풍부하고, 기술 리더십을 가진 베테랑을 유임시켜 사업 경쟁력을 회복·확대하고, ‘트럼프 리스크’에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쇄신이 부족하다” “새 인물보단 돌려막기”이라며 낮은 점수를 주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모’를 겪은 메모리사업부를 전영현 부회장 직할 체제로 바꿨다. 반도체 부문에서만 400여 명 임원 중 4분이 1가량이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선택했다. 스페인 태생인 호세 무뇨스 CEO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현지 생산시설 가동, 친환경차 보조금 대응 등 굵직한 현안을 맡았다. 롯데는 계열사 CEO 21명(36%)을 한꺼번에 바꿨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1980년대생 밀레니얼(M) 세대 인재의 부상이 눈길을 끈다. LG는 지난해 5명에 이어 올해 4명의 80년대생 임원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그룹 내 80년대생 임원 수는 17명으로, 최근 5년 새 세 배로 늘었다. SK도 리밸런싱(사업재조정)을 추진하면서 젊은 임원 발탁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CJ에서는 이번에 80년대생 임원 12명이 나왔다. 1990년생 CEO도 탄생했다. 국내 100대 기업에서 M 세대 임원은 2022년 처음 100명을 넘어선 이래 매년 두 자릿수로 증가하고 있다(유니코써치).
3·4세대 오너 기업인도 전진 배치됐다. 신유열(38) 롯데지주 부사장, 정기선(42) HD현대 수석부회장, 구동휘(42) LS MnM CEO, 구형모(37) LX MDI 사장 등이 이번에 승진했다. 그룹 내에서 경영 보폭을 넓히는 한편 승계 작업도 진행 중이다.
오너 4세든, 1990년생 CEO든 기업이 ‘젊은 피’를 중용하는 건 새로운 리더십으로 미래 불확실성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들은 대개 인공지능(AI), 로봇, 배터리 등 미래 먹거리 전문가들이다. 변화를 생색내기 위해 ‘액세서리’처럼 올린 게 아니라 실력 하나만큼은 검증됐다는 뜻이다.
기업의 임원은 흔히 군 장성처럼 진급이 어려워 ‘별’에 비유된다. 과감한 미션 도전, 이것이 젊은 별들의 첫 번째 과제다. 일찍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언급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발휘돼야 한다. 눈앞의 효율이나 성과만 따지기보다 미래를 대비한 역동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가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는 내년까지 ‘탄소 제거기술 경진대회’를 개최한다. 1등 상금으로 5000만 달러(약 700억원)를 걸었다. 어떤 기술이나 솔루션을 접목해도 무관하다. 목표는 탄소 배출량의 ‘절대적인’ 감축 하나다.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선 이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 수행이 절실하다.
여기에서 걱정되는 한 가지 포인트. ‘나는 빚진 게 없다’는 인식이다. 일부 기업에선 선대, 또는 선배들과 경영 이력이 다른 만큼 이들이 돈 안 대는 사업에 칼질부터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무조건 온정을 펼치라는 게 아니다. 최고 경영진은 결국 스스로 능력을 입증하는 자리다. 설득도, 교감도 필요하다. 저성장 시대의 젊은 별, 안팎으로 숙제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