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장경제 작동 원리 훼손…냉철한 점검 필요

2025-12-28

노란봉투법이 공포된 지 3개월이 지났다. 법 시행까지 주어진 6개월의 유예기간 중 절반이 지나면서, 시행령 발표 등 집행 방식의 윤곽은 점차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지, 그리고 그 결과가 노동시장과 기업 활동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원청·하청 간 임금 격차 주목한

노란봉투법, 시장 고려치 않아

원청 기업과 하청 근로자 관계

기업 간 계약인데도 노사로 간주

협력사 근로 조건 책임 떠안는

법적·논리적 불일치 문제 존재

법이 아무리 비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시장의 참여자는 합리적으로 법에 적응해나간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과 같이 수백 개의 하청기업이 교섭을 요청하는 그런 극단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교섭이 그렇듯이 때로는 갈등적이고 소모적인 상황이 전개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청과 하청기업 근로자 간 협의를 통해 생산성 향상과 임금 인상의 선순환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임금, 생산성과 직무 특성 따라 결정

그런데 문제는 어떤 상황이 나타날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의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협력업체 100개 중 단 한 개에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도 기업은 공급망 전체의 구조를 재편하려고 할 수 있다. 최근 공인노무사 시험 응시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로펌은 노란봉투법 시장이 열릴 것을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법 시행을 앞둔 현장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결과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법이 때로는 악법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필자가 노란봉투법을 반시장적이라고 보는 첫 번째 이유다.

노란봉투법의 동력이 된 문제의식은 원·하청 간 근로조건의 차이, 특히 임금 격차에 있다. 하청기업은 원청과의 도급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 소위 을의 위치에 놓여 있고, 그 결과 하청기업의 결정권, 임금의 경우에는 지불 능력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근로자의 임금이 낮게 책정된다는 논리다. 원청기업의 성과에 하청기업 근로자의 기여가 상당한 만큼 그 성과가 원청 근로자에게만 배분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주장도 뒤따른다.

그러나 위의 주장은 원청과 하청이 거래하는 생산물 시장, 그리고 하청기업이 근로자를 채용하는 노동시장을 고려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청기업이 교섭에 있어서 원청기업에 대해 열위에 있다는 사실과 하청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낮다는 사실은 논리적으로 연역관계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임금은 기업 간 거래가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결정된다. 하청기업이 낮은 도급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해당 기업이 자신의 근로자에게 시장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줄 수는 없다. 노동시장에서 임금은 근로자의 생산성, 직무 특성과 같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하청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낮다면 그것은 해당 노동의 시장 평가가 원청기업 근로자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원·하청 임금 격차가 노동의 시장 가치 차이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생산성을 가진 두 근로자가 똑같은 일을 하는 경우에도 어느 기업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임금이 다를 수 있다. 원청기업의 임금이 시장 임금보다 높게 형성돼 원·하청 임금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생산물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이 독점 이윤을 누리는 한편, 강한 노동조합을 통해 그 이윤의 일부가 근로자에게 이전되는 경우다. 이런 식의 노조 프리미엄이 존재하는 경우 원청기업 근로자는 동일한 노동시장 조건이라 하더라도 독점적 지위도 없고 노조도 없는 하청기업의 근로자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원청기업 근로자의 임금 프리미엄을 밝힌 연구도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독일에서 빠르게 진행되었던 보안, 청소, 물류 부문의 외주화의 과정을 살펴본 이 연구는 동일한 근로자가 원청에서 하청업체로 소속이 변경된 후 임금 인상률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사내 하청의 등장과 임금 구조의 변화: 독일의 경우’, 2017). 해당 연구는 원청에서 일하던 때부터 하청으로 분리돼 하청기업 소속으로 전환된 이후까지 동일한 근로자 집단을 추적해서 관찰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임금 상승률이 떨어진 것은 역으로 이들이 원청에 직접 고용돼 있을 때 이윤 공유와 노조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노란봉투법, 가격 경쟁 차단

이런 맥락에서 노란봉투법을 통해 하청 근로자가 원청과 직접 교섭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 보자. 교섭 결과 하청 근로자의 임금 역시 원청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시장 임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 원청은 그 비용을 도급 가격에 반영해 하청기업에 지급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장 임금으로부터 인위적으로 멀어진 임금을 시장이 가만히 놔두지는 않는다. 다른 하청기업이 시장 임금을 인건비의 기준으로 삼아 더 낮은 도급 가격을 제시하며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이는 시장 경제에서 자연스러운 경쟁이다.

노란봉투법이 이러한 경쟁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더 낮은 비용으로 납품하려는 기업과 그 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거래에서 배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원청과 일부 하청기업 사이에 반시장적 동맹 관계가 형성되면서 외부의 경쟁력 있는 기업은 진입이 차단된다면 시장 경제의 원동력인 경쟁의 원리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노란봉투법을 반시장적이라 생각하는 두 번째 이유다.

사실 대기업 공급망에 편입되는 것은 중소기업에는 아주 중요한 성장과 도약의 기회이다. 대기업에 납품을 시작한 기업은 매출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평판이 개선되고 대기업의 경영 방식을 학습할 기회도 얻는다. 알론소 알파로-우레나(Alonso Alfaro-Urena)와 이사벨라 마네리시(Isabela Manelici), 호세 P 바스케즈(Jose P. Vasquez)의 연구(‘다국적 공급망 편입의 효과’, 2022)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에 납품을 시작한 뒤 국내 기업의 매출이 현격히 증가할 뿐만 아니라(그래프 (a)에서 납품 5년 차에서 33% 증가), 원청인 다국적 기업 외의 다른 기업으로부터 올린 매출도 다국적 기업에 납품을 시작한 시점에는 물량 부족으로 줄었지만 그 이후에는 뚜렷하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래프 (b)에서 20% 증가). 우수한 기업에 납품하면서 새로운 고객사, 더 좋은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게 됐음을 시사한다. 매출이 증가함에 따라 고용도 26% 증가(그래프 (c))했으며, 생산성까지 9% 향상(그래프 (d))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화와 분업 이득 사라질 수도

원·하청 관계를 만드는 외주화 혹은 아웃소싱은 전문화와 분업의 이득을 누리고자 하는 기업의 전략이다. 따라서 외주화를 통해 기업은 생산을 효율적으로 재편하고 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 앞서 연구에서 보았듯이 전문화와 분업의 이득은 협상이 아니라 시장의 원리에 의해 원청뿐만 아니라 하청에도 배분된다. 전체적으로 시장이 커지면 노동 수요가 증가하니 근로자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늘고 임금도 올라갈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원청 기업과 하청 근로자의 관계를 노사관계로 간주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관계는 기업 간 계약을 통해 간접적으로 형성된 관계다. 이러한 법적·논리적 불일치는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만약 노란봉투법이 기업 간 거래 질서를 압도하는 방식으로 해석된다면,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가 훼손되고 비효율이 누적될 위험이 있다.

최근 한 대기업에서 협력사를 대상으로 품질 평가를 강화하고 필요한 경우 경쟁력 있는 외부 협력사로 교체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이후 기업이 협력사 근로자로부터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한 책임을 요구받게 되는 상황에서 기업이 경쟁력 제고를 위한 협력사 관리를 과연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외주 비용 뛰며 기업 경쟁력 저해 우려

외주화는 이제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다. 기술 복잡성의 증대와 글로벌 공급망 확장은 외주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생산의 시작과 종료를 하나의 기업 테두리 안에서 완수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게 됐다. 노란봉투법이 외주 사용의 비용과 불확실성을 과도하게 높인다면, 이는 결국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어떤 이는 어차피 법은 통과됐고 현장에서 조율을 해나가면 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문제가 생기면 법원에서 합리적 판단을 할 것이라 믿는다고 한다. 시장 교란과 불확실성의 대가를 모르는 안일한 생각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지금은 노란봉투법에 대한 냉철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 문헌〉

1) Deborah Goldschmidt & Johannes F. Schmieder, The Rise of Domestic Outsourcing and the Evolution of the German Wage Structure ‘사내하청의 등장과 임금구조의 변화: 독일의 경우’,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2017

2) Alonso Alfaro-Urena, Isabela Manelici, Jose P. Vasquez, The Effects of Joining Multinational Supply Chains ‘다국적 공급망 편입의 효과’,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2022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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