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를 원합니다

2024-11-07

김길웅, 칼럼니스트

우리의 한국명은 ‘개민들레’입니다. 사람들이 ‘빛 좋은 개살구’라 하는 그 ‘개’ 자를 접두사로 얹었군요. 어떡합니까. 사람들마다 한입이 돼 부르는 이름인걸요. ‘개’ 자의 뉘앙스를 모르지 않습니다. 개떡,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하듯 ‘참’이 아니라는, 가짜라는 걸.

실은 마뜩잖아요. 그렇게까지 홀대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언제 이곳에 온다 한 적이 있나요. 사람의 봄에 붙어 멀리서 멀미하며 긴 항해 끝에 이른 곳이 바로 이 섬이었습니다. 우리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륙이었지요. 제주는 풍광이 수려한 데다 따스한 햇볕과 살랑대는 훈풍이 참 감미로웠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제주 사람들은 자연에 동화돼 선량합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위해하려 하지 않고 삶 또한 질박합니다. 자연과 이곳 섬사람들에게 한눈에 반해버렸으니까요.

한데 그런 고운 심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유독 우리한테는 쌀쌀맞습니다. 증오하고 배척하려 듭니다. 식생을 교란하고 파괴한다는 겁니다. 당장 토종 민들레가 설 자리를 잃었다고 야단법석입니다. 아닙니다. 두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과연 그런가. 이왕 낯선 땅에 왔으니, 우리에게도 한 뼘의 땅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수입이다 갈라치지 말고 더러 묵인하면 안 될까요.

이 섬에 와 십수 년, 그새 갖은 박대 속에도 개체를 불리며 영역을 넓혀 왔지요. 산과 들에 흩어 피다가 급기야 아래 세상으로 내려왔습니다. 좁고 거친 자드락이며 밭두렁, 덤불숲 할 것 없이 몸을 던졌지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어요. 우리의 이 왕성한 번식을 창궐이라 하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섬에 귀화하려는 의지입니다. 제주는 이제 우리의 운명입니다. 우리에게 영주할 수 있는 온전한 권한을 부여하는 공식적인 절차를 밟게 해줘야 합니다.

사람들이 귀화하려면 한국어를 잘 할 수 있어야 하고, 이 나라의 역사·문화·전통에 통달해야 하는 게 기본인 것을 압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곳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고, 식생과의 조화로운 타협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려 단단히 마음먹고 있습니다.

특히 생태계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제력을 시험할 것입니다. 호양(互讓)과 인보(隣保)의 미덕을 배우고 실천하겠습니다. 그새 우리는 속도를 조절하면서 하산 길에 서서 나름의 친화력을 발휘하느라 애쓰고 있지요. 일단 외곽지역의 공원이나 공공건물의 마당으로 들어가 화단에 샛노란 색을 덧칠해 놓습니다. 처음엔 싫어하더니 요즘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더라고요. 화단이나 모퉁이를 더욱 진하게 개칠하며 황금색으로 물들여놓았지 뭡니까.

이쯤 되면 우리를 거둬들여야 하는 것 아닐는지요. 공치사하려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수용하라고 정중히 올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다문화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쯤에서 제발 우리를 받아주십시오. 섬을 해치기는커녕 동서와 남북을 잇는 큰길의 길섶이며 화단을 노랗게 물들여 관광객들의 시선을 붙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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