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羽化)

2024-11-07

송창윤 수필가

일 년 전 지금, 이맘때다. 현관을 나서는데 노랑나비가 발밑에 불시착한다. 죽은 듯 계단바닥에 붙어 있는 게 노란 색종이 조각 같다. 쪼그려 앉아 손톱만 한 날개에 새겨놓은 무늬를 응시하며 살포시 손길을 주자 가녀린 날개를 펴고 하늘하늘 오른다. 혹시 추락하지 않을까 뒤돌아보며 대문을 나서노라니, 서넛 친구들이 배웅하듯 나풀나풀 따라오는 게 아닌가.

늦가을 같지 않은 따사로운 아침, 몸에 닿을 듯 왔다 멀어져간 노란 날개들이 예배시간에도 눈에 아른거린다. 노랑나비 현현(顯現)은 행운으로 다시 태어나는 징후라던데…. 집에 돌아와 마당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노란 날개들이 하늘빛에 조명을 받으며 떼 지어 춤을 춘다. 아주 높게 때론 낮게 에어쇼 하는 몸놀림이 얼마나 자유롭고 평화로워 보이는지.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이 이 같을까. 춤사위를 마친 나비들은 마당을 두루 다니며 이 꽃에 사랑 찍고 저 꽃에 사랑을 찍는다. 한살이를 다하기 전 생명을 잇고픈 사랑의 행위이리라.

노랑나비 한살이를 그려본다. 미미한 알이 부화하면서 투명한 애벌레로 변태하고, 애벌레는 해체되어 부드러운 자루 모양의 번데기로 탈바꿈한다. 번데기는 외관과 내부 조직이 완전히 재조립된 후 얼기설기 짜인 고치 구멍을 뚫고 나와야 성충나비가 된다. ‘번데기 탈피’ 없이는 나비로 태어날 수 없다.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는 벌레 같은 인생들에게 육신을 벗는, 죽음 없이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수 없음을 계시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어스름이 내리고 세찬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든다. 노랑나비가 피난처를 찾는 듯.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베란다의 진달래 우둠지 끝에 몸을 붙인다. 거실 창밖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노르스레한 잎과 일체 된 나비가 눈길을 내내 붙잡는다. 이튿날 아침, 어둠 살이 거치자 어디론가 피신했던 직박구리, 동박새, 까치 등이 날아와 월계수, 산수유, 산딸나무에 앉으며 야단법석이다. 하지만 우둠지에 매달린 노랑나비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밤새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에 시달리다 한살이를 마감하려는지.

며칠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나 했는데 이번엔 폭우를 동반한 강풍이 아닌가. 가녀린 날개로 노랑나비는 어디로 피난처를 찾아갈지. 사나흘 지나자 다행히 기상특보가 걷힌다. 순색의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기묘한 형태로 어디론가 흘러가고 청랑한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더듬으며 지난다. 내년 부활절에나 만날 수 있을까 했던 남방노랑나비가 찾아온 게 아닌가. 행여 이태 전 초록별을 떠난 친구 소식이라도 전해 주고 싶었던지….

먼 여행에서 돌아온 노랑나비는 훠이훠이 날아다니다 보랏빛 로즈메리 꽃에 삽뿐 내린다. 아내가 촘촘한 바늘잎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가슴으로 향냄새를 품곤 했던 허브다. 둥근 대롱으로 꿀을 빠는 노랑나비를 몰래 응시하며 살며시 잎을 어루만지자 짙은 향이 아내의 체취처럼 온몸에 스며들며 나직한 속삭임이 귓가에 와닿는다.

영혼의 친구여, 바람에 몸을 맡겨라. 꽃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영접하라. 보랏빛 향기 따라 황혼의 삶을 이어가렴. 오늘 내가 살아 있음에, 오늘 내가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 그러다 인생 한살이를 다할 때가 오면 유유창천(悠悠蒼天)을 향해 훨훨 날아오를 수 있기를….

백록담에 첫눈이 내렸다. 앞마당에도 찬 기운이 엄습하며 빨간 산수유 열매가 툭툭 떨어지고, 감나무, 산딸나무, 자작나무 이파리들이 낙엽 되어 이리저리 뒹군다. 엄동이 가까이 오는데, 노랑나비는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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