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가 미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실효 관세율이 사실상 제로(0) 수준이라는 것을 미국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미국이 다음 달 2일(현지 시간)부터 국가별로 부과하기로 한 상호관세는 한미 관세율 격차 외에도 △비관세장벽 △내국세(부가가치세) △환율 △무역정책 등 5대 요소를 총망라해 결정하는 것이어서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대응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지난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한미 양국의 실효 관세율이 0.79%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했다”며 “러트닉 장관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한국의 관세율이 미국의 4배라고 지적했지만 두 차례에 걸친 장관급 회담과 꾸준한 실무 채널 대화를 통해 사실 관계를 바로잡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한국의 상품 평균 관세율은 0.79%다. 중간재 등을 대상으로 한 각종 관세환급 정책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 장관은 지난달 26~28일 장관급으로는 처음 미국을 방문한 데 이어 20~21일에도 미국 워싱턴 DC를 찾아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와 접촉했다.
오해를 정정했지만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의 근거로 관세율 격차를 포함한 5대 요소를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가세나 농축수산물에 대한 검역 절차 등을 빌미로 관세 부과를 강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안 장관 역시 “대부분 국가가 관세 조치 대상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굳건한 각오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대비하고 있다”며 “미국이 국가별로 상호관세율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근거를 설명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품목별 관세 예외도 나오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과거 각국에 수입 쿼터 등의 예외를 인정해준 결과 ‘미국 철강 산업 보호’라는 정책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미국 행정부 내에서 감지되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대미 무역흑자를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결국 미국이 신경쓰는 것은 막대한 무역 적자”라며 “에너지와 농축산물 수입 등 흑자 폭을 줄일 방안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 역시 “민간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미국과의 협상에 도움이 된다”며 “기존에 이야기 나왔던 투자 프로젝트라 해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포장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미국 에너지부와 함께 한국의 민감 국가 목록 등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무 협의에 착수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민감 국가 목록 자체가 기밀이기 때문에 해제 절차를 구체적으로 설명드리기 어렵다”면서도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데는 양측이 공감대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