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우리를 황당하게 만드는 것들

2024-11-03

우리는 ‘내 친구의 친구’ 이야기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칩과 댄 히스 형제의 명저인 『스틱』의 프롤로그도 ‘내 친구의 친구’ 이야기로 시작된다. ‘신장을 훔쳐 가는 장기 도둑’ 이야긴데 미국에서 유행한 도시 괴담 중 하나다. 한번 듣고 나면 뇌리에 착 달라붙어(스틱, stick) 누구라도 완벽하게 재생한다. 하지만 이 괴담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이처럼 세상에는 황당한 일들이 숱하다. 사실이나 사건 그리고 이야기들, 심지어 광고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의 TV 광고를 보자. 복권 수입으로 저소득층 주거 안정 등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사업을 하고 있으니 복권 구매는 기분 좋은 ‘기부’라고 강조한다. 복권위원회의 조사에서는 국민의 62%가 복권을 산다고 나온다. 복권은 이제 국민상품이 된 듯하다. ‘복권이 있어서 좋다’에 대해 복권 구매자의 81%가 공감한다고 했다. 적은 돈으로 일상의 기쁨을 주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복권 구매가 기부행위라는 주장은 아무래도 황당하게 들린다. 기부란 대가 없이 내놓는 행위인데, 기부를 목적으로 복권을 구매하는 것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행심’이 복권 구매자의 심리 저변에 먼저 자리하고 있지는 않을까. 열심히 일하지 않고 요행으로 큰 대가를 얻는 것은 감나무에서 떨어진 홍시가 입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복권 당첨으로 큰돈을 얻었던 사람들의 삶이 비참해진 사례도 자주 듣는다. 복권 사기도 매우 흔하다고 한다. 복권 구매를 기부행위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다.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알리)의 TV 광고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상품이라도, 최저 가격에, 아무 염려 말고, 즉시 구매하라고 부추긴다. 반품도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무차별 구매를 유도하는 광고다. 물론 대다수 소비자는 이런 광고를 그대로 믿기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소비지출을 한다. 특히 독일 국민은 물건을 사려고 지갑을 열 때 세 번을 생각한다고 한다. 지금 당장 꼭 필요한 상품인가, 다른 대안은 없는가, 더 시급하고 중요한 사용처는 없을까를 따진다. 합리적 소비문화가 정착된 결과다. 그들이 알리의 광고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무척 궁금하다.

진짜 황당한 사건은 매년 이맘때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는 폭탄세일에서 만난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매우 큰 폭의 할인 행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 중국의 광군제가 ‘빅세일’을 천명하며 이달에 열린다. 국내에서도 백화점은 물론이고, 대형마트와 이커머스 업계까지 바겐세일을 예고하고 있다. 쿠팡은 유료 회원을 대상으로 인기 상품을 최대 70% 할인가에 판매할 것이라고 한다. 알리는 최대 97% 할인하고, 11억 원 상당의 경품추첨 행사도 한다. 하지만 코리아세일페스타까지 동참하는 11월의 치열한 할인 경쟁이 소비자의 쇼핑을 자극해서 얼어붙은 내수시장을 되살릴지는 의문이다.

세일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유효한 마케팅 도구다. 서민 가계에 큰 도움을 주고 단골고객에게는 사은의 표시가 되어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긍정적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게에 나붙은 ‘언제나 세일’이라는 황당한 문구를 소비자들은 ‘언제나’ 불신한다. 일부 세일에서는 철 지난 재고품을 정상 제품으로 속여 팔거나, 할인 가격을 미리 정해놓고 가격을 할인하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세일은 평소에 정가로 구매한 단골고객들에게 오히려 손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 결과 단골로부터 외면을 당하거나 고객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아예 세일을 하지 않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에게 “바겐세일은 없다”라고 자랑하는 회사도 나온다. 단골고객들의 충성도가 높고 값싸게 판매하기 때문에 바겐세일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단지 특정 상품의 재고가 많이 쌓여 있을 때만 짧은 기간에 단골고객을 주 대상으로 ‘재고 떨이’ 행사를 한다. 이로써 고객의 신뢰도와 충성도는 더욱 높아진다.

소비에는 욕구를 당장 충족하려는 경우와 일정 기간 욕구 충족을 연기하려는 두 가지 행태가 있다. 전자의 소비자는 필요를 느끼는 즉시 상품을 구매한다. 이런 소비자는 세일 현장에서의 즉시적 욕구로 인해 불필요한 물품까지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과소비 가능성도 높다. 구매한 물건에 대한 애착도 떨어지고, 쇼핑에 중독되기도 한다.

11월은 저렴한 가격에 꼭 필요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좋은 때다. 하지만 세일의 부작용과 위험성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김용섭과 전은경은 『소비자가 진화한다』에서 “저가격을 지향하는 제품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외면당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당장에는 약처럼 보이나 장기적으로 독이 되는 요소일 수도 있다”라고 강조한다. 세일을 보약처럼 여기는 마케터가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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