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사기용 AI’ VS ‘범죄 예방용 AI’ 경쟁, 영국에서 본격화

2025-11-16

영국 주요 이동통신사들이 정부와 협력해 인공지능(AI) 기반의 ‘사기전화 차단망’을 구축하기로 했다. 해외 콜센터 범죄조직이 사용하는 ‘번호 위조(number spoofing)’ 전화를 AI로 막겠다는 것. 이는 소비자들을 속여 사기에 빠뜨리는 범죄자들을 겨냥한 새로운 정부-민간 합동 이니셔티브라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브리티시 텔레콤 이이(EE), 보더폰, 쓰리, 버진미디어 오투(O2) 등 영국 주요 이동통신사는 향후 1년 안에 각사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해 ‘번호 위조’ 전화를 차단하기로 공동 약속했다. 이 조치는 영국 정부와 통신사들이 새로 체결한 ‘통신 헌장(telecoms charter)’의 핵심 내용이다. 이는 증가하는 사기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AI는 사기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사전에 식별하고 차단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범죄 발생 전에 이를 막는 예방 체계를 작동시킨다. 또한, 이동통신사들은 데이터 공유를 확대한다. 특히, 고도화된 ‘통화 추적(call tracing)’ 기술을 전면 도입해 경찰이 사기범들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강화하기로 했다.

‘번호 위조’란, 해외 콜센터에 있는 범죄자들이 실제로는 외국에서 전화를 걸면서도 발신 번호를 국내 은행이나 경찰 전화처럼 조작해 표시하는 수법이다. 이런 방식으로 범죄자들은 자신을 ‘은행 직원’이나 ‘공무원’으로 속이고, 피해자에게 “안전 계좌로 송금하라”고 요구한다.

영국 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은 이미 3년 전부터, 이동통신사들에 이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다고 FT는 강조했다. 그러나 전화망이 노후화돼, 범죄자들은 영국에서 여전히 번호를 조작할 수 있었다. 5세대(5G) 최신 기술로 업그레이드되면 번호 위조는 불가능해지고, 전화의 실제 발신 국가도 명확히 표시될 예정이다.

업계 자료에 따르면, 영국 모바일 사용자의 96%는 화면에 표시된 번호를 보고 전화를 받을지 여부를 결정한다. 응답자의 3/4은 ‘국제 전화 번호’가 표시되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영국의 사기 방지 담당 장관인 로드 한슨은 “영국을 세계에서 사기범이 활동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재 사기는 영국 내 전체 범죄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 정부 내에서는 사기 예방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FT는 밝혔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기 사건의 17%가 통신을 매개로 발생하며,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유형은 특히 ‘신분 사칭 사기(impersonation scam)’ 등 피해 금액이 큰 사건이 많아 전체 금전 피해의 29%를 차지한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씨(BBC)의 프로그램인 ‘스캠 인터셉터(Scam Interceptors)’ 진행자이자 ‘사기꾼을 이기는 법’의 저자인 닉 스테이플턴은 이번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준비에) 1년이나 걸리는 건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사이에도 많은 돈이 사라질 것”이라며 “진심으로 사기 근절 의지가 있다면 내일이라도 시행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새로 시행되는 ‘사기 보상 규정’에 따라 대부분의 피해자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스테이플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충격, 트라우마, 경제적 스트레스는 막대한 수준일 것”이라고 FT에 덧붙였다.

한편, 영국 금융협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동안 범죄자들은 영국 소비자들로부터 총 6억2900만 파운드(약 1조 2129억 8247만 원)를 가로챘다. 특히 AI 기술로 만든 ‘딥페이크 영상’이 고액 투자사기나 연애사기에 점점 더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AI를 활용해 △실시간 결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심 거래를 차단함으로써, 같은 기간 6억8200만 파운드(약 1조 3154억 68만 원)의 추가 피해를 예방했다고 밝혔다. 이는 사기 예방 실적 중 사상 최대 규모라고 FT는 말했다.

권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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