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20개월 만에 최대…정유 4社 “그래도 적자”

2025-10-10

국내 정유 4사가 20개월 만에 최고치로 정제마진이 회복되고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5년 만에 동반 적자를 기록할 처지에 놓였다. 정유업계의 수익을 좌우하는 정제마진이 큰 폭 오르며 4분기 실적 개선이 예상되지만 공급 차질에 따른 단기적 현상이어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발 고관세가 촉발한 글로벌 수요 둔화로 국제유가가 내년에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악재로 꼽힌다.

10일 정유 업계에 따르면 이달 기준 정제 마진은 배럴당 13.1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2월(14.1달러) 이후 20개월 만의 최고치다. 정제마진은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얻은 휘발유·경유 등 제품을 팔아 얻는 수익에서 원유 구입비를 뺀 차익으로 핵심 수익 지표 중 하나다.

정제 마진 오름세는 석유 제품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를 향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진 때문이다. 러시아는 특히 경유 공급이 많은데 8월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정유 설비를 집중 타격해 처리량이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러시아는 이에 휘발유 수출 금지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한 데 이어 경유 수출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해 글로벌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반등했다.

다만 정제 마진 반등에 따른 정유 4사의 수익 개선 폭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아 올 해 적자는 불가피할 것으로 에상된다. 금융투자업계의 정유사 실적 추정치에 따르면, HD현대(267250)오일뱅크는 올 해 5490억 원의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추산됐다. 에쓰오일(3851억 원),과SK(034730)에너지(1885억 원), GS(078930)칼텍스(1320억 원) 등도 1000억대 이상의 영업 적자가 우려되고 있다. 정유 4사는 상반기에 총 1조 3200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는데 하반기 수익 회복 규모는 소폭에 그칠 것이란 얘기다.

정유 4사가 일제히 적자를 기록하는 것은 코로나19 충격이 몰아쳤던 2020년 이후 5년 만이다. 당시 정유 4사는 한 해 동안 3조 4000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 육상·항공 운송이 제한되며 연료 소비가 크게 줄어든 데다 글로벌 소비가 둔화한 여파가 동반 적자로 이어졌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반기에 국제유가가 완만한 하락세를 보여 재고평가 손실이 커졌고 정제마진도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5달러 부근까지 떨어져 큰 손실을 봤다”며 “정제마진의 반등세가 수요 회복보다는 공급 차질에서 비롯돼 중장기적으로 지속될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실제 내년에도 정유 업계의 실적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은 적지 않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내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평균 가격이 배럴당 47.77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70달러를 웃돌았던 WTI 선물 가격은 이날 기준 61.36달러까지 떨어졌는데 이보다 20% 넘게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본 것이다.

EIA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유가를 지탱하기 위해 적극적인 감산책을 펴더라도 미국·캐나다·브라질 등 비(非) 오펙 국가의 생산 확대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글로벌 경기 둔화와 에너지 전환, 고효율 차량 및 전기차의 확산 역시 원유 수요를 줄일 요인으로 분석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해상운임이 10년 만에 최대 낙폭을 보이는 등 관세 전쟁이 촉발한 수요 둔화에 대한 걱정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유사들은 국제 유가의 등락에 휘둘리는 정제 사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인공지능(AI)과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효율화를 추구하고,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줄이면서 가격이 저렴한 서아프리카와 미국산 원유 비중을 확대하는 다변화 정책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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