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7년 5월 6일 오후 7시쯤 미국 뉴저지주 레이크허스트 해군 항공 기지 상공.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출발한 비행선 힌덴부르크호가 착륙 준비에 들어갔다. 평형을 맞추고 밧줄을 내리며 분주하던 오후 7시 25분,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화염이 솟구쳤다. 힌덴부르크호 참사(사진)가 일어났다.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수소 가스 누출과 정전기 방전이 유력하게 지목되었지만 테러나 사보타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예견된 참사라는 점은 분명했다. 힌덴부르크호는 비활성기체인 헬륨 대신 잘 폭발하는 수소를 통해 부력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그래야만 했을까. 비행선을 뜻하는 ‘체펠린(Zeppelin)’은 현대적 경식 비행선을 제안한 독일의 발명가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의 이름이 보통명사화한 것이다. 20세기 초 독일은 비행선으로 세계의 하늘을 지배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 이미 비행기에 속도와 안정성 면에서 뒤지고 있었지만, 독일은 소위 ‘국뽕(국가에 대한 맹목적 자부심)’의 상징이 된 비행선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치가 독일을 지배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나치 독일은 라인강 연안의 도시 루르를 강제 합병했고 미국은 수출 금지로 맞섰다. 비행선의 핵심 소재인 헬륨도 그중 하나였다. 자체 헬륨 생산 능력이 없던 나치 독일은 수소를 넣어가며 비행선을 운항했고, 결국 힌덴부르크호가 불길에 휩싸이며 승선 인원 97명 중 35명이 사망했다. 과학과 국수주의, 파시즘이 뒤엉켜 벌어진 비극이었다.
중국은 과학과 기술로 ‘굴기’하겠다며 내셔널리즘의 기치를 세우고 있다. 반도체 및 생산 장비 수출 금지로 맞서던 미국은 인공지능(AI) 및 첨단 기술의 우위를 지키고자 한다. 예측 불가능하게 전개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