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층에 그쳤던 SF 연극의 대중성 확보
음향·조명 등으로 상상력 극대화
올해 초, 천선란 작가의 SF 소설 ‘천 개의 파랑’이 연극과 뮤지컬로 동시에 만들어졌다. 두 공연은 모두 매진을 기록하며 비인기 장르로 치부됐던 SF 소설이 공연계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연극계엔 해당 작품 이후 눈에 띄게 SF 장르 연극이 쏟아졌다.
앞서 지난 7월 2024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최초 SF 공연 시리즈 ‘대리된 존엄’을 무대에 올렸고, 다음 달인 8월 ‘거의 인간’을 잇따라 공연했다. 또 지난 9월 AI를 소재로 한 ‘시뮬라시옹’, 기후 문제를 다룬 SF 연극 ‘제로쉴드제로’이 무대에 올랐고 2014년 초연돼 공상과학 연극의 모범이 된 연극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도 10년 만에 돌아왔다.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처럼, SF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도 이어졌다. 극단 돌파구는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 초청작으로 초연돼 전석 매진을 기록한 연극 ‘지상의 여자들’을 지난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다시 공연했다. 이 작품은 박문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우란문화재단은 SF 작가 김보영의 동명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땅 밑에’를 지난 8월 우란2경 무대에 올렸다. 땅 밑에 존재한다는 지국을 찾아 지하미로를 탐사하는 하강자들의 이야기로, 무대에 배우가 없이 3D 오디오 기술을 적극 도입한 ‘오디오형 연극’으로 제작돼 상상력을 극대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밖에도 ‘로켓 캔디’ ‘모든’ ‘지니어스페이스’ ‘함수 도미노’ 등 SF 장르 연극들이 잇따라 공연되고 있다.
SF 연극에 대한 수요는 ‘천 개의 파랑’ 이전에도 꾸준히 존대했다. 올해까지 총 9회째 진행된 SF 연극제도 있다. 실제로 이번 연극제에서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인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다만 업계에선 ‘천 개의 파랑’을 기점으로 SF 연극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한 공연 관계자는 “이전의 SF 연극이라 하면 실험적인 장르로 여겨졌고, 대중적인 공연보다는 마니아층에서 수요가 확인되는 장르였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런데 ‘천 개의 파랑’과 같은 베스트셀러 작품이 무대화하면서 많은 일반 관객들이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SF 연극이 대중성까지 잡고 가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미디어 매체에서 SF 장르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영향도 있다. 영화 ‘듄’ 시리즈를 비롯해 ‘삼체’ ‘기생수’ ‘종말의 바보’ 등이 잇따라 흥행하면서다. 천선란 작가 역시 SF 소설과 그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호응을 얻는 이유에 대해 “SF는 오래전부터 인간과 사회의 거대한 담론을 다뤄 왔다”며 “독자들은 SF를 읽으며 사회가 무엇인지 답을 찾고, 인간이 원래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