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맹자>를 읽고

2025-02-07

계엄 사태에 분노하며 읽은 <맹자>

혼탁한 세상, 맹자의 처연함과 꼿꼿함

모두가 리(利)를 쫓아갈 때 나만 의(義)를 지켜나가는 것은 바보짓일까? 가족주의에 기반한 사랑의 확장을 강조한 맹자와 혈연을 뛰어넘는 무차별적 사랑을 설파한 묵자 중에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덕에 기반한 정치와 힘에 의한 정치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맹자>라는 고전을 읽고 나서 던져보는 질문들이다.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1월 바쁜 시간을 쪼개 맹자를 완독했다. 고전은 함께 공부해야 제맛이지만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오기를 소망한다. 맹자를 읽게 된 이유는 나라 안에서 일어난 계엄 사태와 이후에 일어나는 이상한 정치행태에 분노하기도 했고 일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맹자(B.C.372~B.C.289)의 호연지기를 기르고 싶기도 해서였다.

한자로 된 원전의 글자 수가 3만5000자나 되고 원전을 번역하고 뜻을 덧붙이면 시중에 나와 있는 맹자라는 책은 대부분 두께가 만만치 않다. 물리적 양에서 벌써 주눅이 들기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하루에 한 장씩(일곱 장이 상·하로 되어 있음) 빠지지 않고 읽다 보면 보름 정도 안에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고전은 번역과 해설도 중요하기에 이기동 교수의 번역본이 마음에 든다. 1951년생인 그는 유학의 본산 성균관대 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동양 고전에 대한 번역본을 내놓았다. 특히 그의 강설 시리즈는 정확한 번역과 맛깔나는 해설이 돋보여 읽다 보면 앞에서 그의 강의를 듣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흥미롭고 지루할 틈이 없다. 그의 <맹자 강설>(맹자, 이기동 역해, 성균관대 출판부, 2010)은 수많은 맹자 번역서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십이라는 나이가 훌쩍 지나서 제대로 접한 <맹자>는 왜 고전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제세구민(濟世救民)을 위한 그의 집념과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이 통하지 않는 데 대한 고뇌와 좌절, 그럼에도 의연히 걸어가는 인간 맹자의 처연함과 꼿꼿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책에는 열국(列國)을 주유하면서 자신의 뜻이 좌절되자 수심이 가득한 맹자에게 제자가 ‘평소 부동심을 강조하는 선생님의 평소 말씀과 지금의 모습이 다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따져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 맹자의 모습을 확인하는 흥미로운 대목이기도 하다.

바른 정치의 요체는 애민 정치

지도자의 인격과 품격이 기본

어느 시대나 더하고 덜함의 차이가 있겠지만 민중의 삶은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맹자를 읽다 보면 그가 인간의 본질로 내세우는 불인지심(不忍之心,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대목이 너무 많다. 마치 아비규환을 보는 듯하다. “흉년이 들고 굶주린 해에 그대의 백성 중에 노약자로서 구렁에 떨어져 구르거나, 장성한 자로서 흩어져 사방으로 가는 자가 수천 명이로다.(凶年饑歲 子之民 老羸 轉於溝壑 壯者 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公孫丑 章), “왕의 마굿간에 살찐 말이 있는데도 백성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으며 들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는 짐승을 내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仁義充塞 則率獸食人 人將相食)”(滕文公 章), “백성들이 학정에 시달려 초췌해진 것이 이때보다 더 심한 적이 있지 않았다.(民之憔悴於虐政 未有甚於此時者也)”(公孫丑 章).

왕도정치를 내세우려는 의도에서 한 맹자의 말이 200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에도 새삼스럽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항산 유항심(無恒産 有恒心)을 통한 백성의 생업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애민 정치를 통한 바른 정치의 요체를 확인하게 된다.

지도자의 인격과 품격이 정치를 함에 기본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곳곳에 드러난다. “인(仁)하지 아니하면서 높은 자리에 있으면, 이는 그 악폐를 뭇사람에게 퍼뜨리는 것이다.(不仁而在高位 是播其惡於衆也)”, “자기의 백성에게 포악하게 하는 것이 심하면 몸이 시해당하고 나라가 망하며, 심하지 아니하면 몸이 위태롭게 되고 나라가 삭감된다.(暴其民 甚則身弑國亡 不甚則身危國削)”(離婁 章). 수없이 언급되는 맹자의 이러한 언설은 <맹자>가 동양에서 ‘정치철학서의 원조’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에 기반에 사람을 대하고

‘의’를 지키며 나아가기를

책 속에 등장하는 불인지심과 사단(四端), 인과 의, 집의(集義)와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실존적 불안과 고난 속에서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자존감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삶의 에너지를 외부에서 찾기보다는 맹자가 강조한 이러한 가치들을 마음에 품고 나아가 보자. 맹자는 인을 사람의 편안한 집에 비유하고 의는 사람의 바른길에 비유하는데(仁人之安宅也,義人之正路也) 이 말을 통해서 타인과의 과도한 경쟁과 갈등으로 지친 삶 속에서 ‘인’에 기반해 사람을 대하면 삶이 더욱더 여유로워지고, 행동의 원리로서 ‘의’를 지키며 살면 삶이 조금 더 가치 있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맹자>를 통해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한파 속에서도 올바른 정치에 대한 희망을 품어 본다. 일상에서 흔들리는 나를 들여다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호연지기)도 가져 본다. <맹자> 속 아래와 같은 말이 희망이 아니라 현실이기를, 모두가 의를 마음에 품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기를, 그래서 모두가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 기쁨이 충만한 을사년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과 같은 때를 당하여 만승의 나라가 인정(仁政)을 행한다면 백성들이 기뻐하는 것이 거꾸로 매달린 것을 푼 것과 같을 것이다.(當今之時 萬乘之國 行仁政 民之悅之 猶解倒懸也)”(離婁 章), “어진 정치는 굶주린 자에게는 쉽게 밥이 될 것이며, 목마른 자에게는 쉽게 음료가 될 것이다.(飢者 易爲食 渴者 易爲飮)”(公孫丑 章), “백성이 가장 귀하고 나라가 그 다음이며 임금이 가장 가벼운 존재이다. (民爲貴 社稷 次之 君爲輕)”(盡心 章).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남목고 교사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