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재의 침묵이 길어지는 나날, 계엄 이후부터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나에게 설득력 있는 진단은 우리가 후기 파시즘 사회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을 통해 우열을 가리고, 그 결과에 복종하는 체제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강자 동일시와 약자 혐오, 흑백논리에 따라 쉽게 폭력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장편소설 『순응주의자』를 읽은 것은 절묘한 우연이었다. 작품은 한평생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느낀 사람이 정상성을 열망한 나머지 어떻게 파시스트가 되어 가는지, 그 내면을 주의 깊게 보여준다. 어린 마르첼로는 폭력에 대한 본능적인 열망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풀들을 베어내고 그다음에는 도마뱀, 그리고 고양이를 죽인다. 마침내 총을 주겠다고 유혹한 소아성애자 신부를 우발적으로 쏘면서 살인에 이르지만 그 때문에 더더욱 보통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정상성에 대한 열망, 모두가 인정하는 일반적 규칙에 부합하려는 바람, 다르다는 것이 죄를 의미하는 순간부터 타인처럼 되고자 하는 소망이었다.’

무솔리니 체제에서 ‘보통 사람’은 파시스트이기 때문에 마르첼로는 주저 않고 그에 따른다. 정권에 항거하는 대학 은사를 파리까지 따라가 제거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자기 죄에 고립된 마르첼로는 스스로를 ‘비정상이고 미친 외톨이’가 아니라고 믿고 싶기에 평범한 삶 속에 스며들고자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 ‘비정상으로 이루어진 정상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제목이 ‘순응주의자’인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문학은 재판관이 아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마르첼로를 비판하거나 냉혈한으로 다루지 않고 오히려 그가 가진 독특함, ‘순응하고자 하는 욕망’에 초점을 맞춘다. 이른바 엘리트 집단에서부터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린 폭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감춰지고 드러나는 욕망의 스펙트럼 속에서 강력한 동조 강박, 순응주의를 목격하고 있다. 우리 안의 파시즘을 더더욱 성찰해야 할 때다.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