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뒤의 세상

2025-03-24

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지쳐간다. 기다리는 일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다시 문이 닫힌다”(「너를 기다리는 동안」) 그런데 그 기다림의 대상은 사람마다 같은 듯 다르며, 어쩌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끝내 등장하지 않는 ‘고도’처럼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일 수도 있다. 탄핵 찬성 또는 반대를 부르짖으며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언가? 어찌 되든 문이 닫힌 후 더 거대한 혼란의 소용돌이가 펼쳐지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히틀러와 나치: 심판대에 선 악마』(2024) ‘1화 악의 기원’에는 히틀러가 나치당을 접수하고 폭동을 일으킨 죄로 재판장에 선 모습이 그려진다. 사건은 이랬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바이마르 공화국에 엄청난 보상금과 무장 해제를 요구하고 독일 경제는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른다. 초인플레이션과 사회적 갈등 상황은 히틀러라는 악마를 불러들인다.

히틀러는 바이에른 정부가 집회를 열고 있던 뮌헨의 유명 맥주홀에 급습해 정부 인사에게 총구를 겨눈다. 히틀러는 주요 정치인들로부터 새로운 독재 정권에서 할당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그리고 극도로 민족주의적인 청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연설을 한다. 동시에 나치당의 돌격대와 에른스트 룀이 경찰과 군 기지를 장악하려고 했지만 일이 잘 안 풀린다. 당황한 히틀러와 나치당은 뮌헨 중심부인 펠트헤른할레에서 경찰과 맞닥뜨려 총격전을 벌인다. 나치와 경찰이 여럿 사망한다. 폭동을 일으킨 죄로 히틀러는 재판장에 선다.

히틀러는 국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체제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호소하는 것처럼 연출한다. “네, 제가 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 독일 제국을 파괴하고, 이 미친 공화국을 날조한 혁명가들이야말로 진짜 범죄자죠.”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도 독일도 피해자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부패했고 자본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으므로 역사의 여신은 미소를 지으며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 한다. 그때 판사 한 명은 “히틀러라는 사람 정말 훌륭한 분이군요.”라고 말한다. 그런 발언은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징역 5년형이 선고되고, 그에게 동정적인 우익 판사는 6개월이면 가석방 자격을 얻을 것이라 덧붙인다. 히틀러는 교도소에서 자서전 『나의 투쟁』을 집필하며, 폭력과 투표함을 통한 독일 정복, 세계 정복을 꿈꾸게 된다. 만일 그때 히틀러가 권력을 어떻게 남용할지 판사들이 간파하고 악의 기원을 잠재울 수만 있었다면, 약 110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슬라브족·정치범 등의 학살은 없었을 것이다. 

탄핵 정국에서 갈가리 찢긴 대한민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는 판사들의 결정에 달렸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그 결정이 무엇이든 우리는 오랜 기다림 뒤에 다가올 혼란 속에서도 살아내야 한다. 요즘 한창 인기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광례’의 말이 떠오른다. “살다가 살다가 똑 죽겠는 날이 오거든 가만 누워 있지 말고 죽어라 발버둥을 쳐. (중략) 나는 안 죽어. 죽어도 살고야 만다. 죽어라 팔다리를 흔들면 꺼먼 바다 다 지나고 반드시 하늘 보여. 반드시 숨통이 트여.”라는 말.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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