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 중앙일보를 말하다

제60회 중앙일보 독자위원회가 지난 25일 본사 9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오세정 위원장(전 서울대 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선 ‘2025 자영업자 리포트’ 시리즈와 경제 분야 심층 취재 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 등 굵직한 사법 이슈를 정확하고 깊이 있게 전달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단 위원들은 아쉽다고 판단한 대목에 대해선 입장을 분명하게 개진했다.
▶주영환 변호사=3월 한 달은 윤석열 대통령 구속 취소, 총리·감사원장·중앙지검장 탄핵 기각 등 이례적으로 굵직한 사법 결정이 이어진 시기였다. 중앙일보는 복잡한 쟁점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했고, 담당 기자들도 결정 취지를 이해하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 보였다. 이번 혼란은 공수처 설치 등 2019부터 2022년까지의 사법 체계 대변화의 여파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고 해설도 충실했다. 다만 윤 대통령 구속 취소 보도의 경우 법원, 검찰, 공수처 세 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더 충분히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향후 국민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분석 기사를 기대한다. ‘홈플러스 사태로 본 사모펀드의 세계’ 제하의 3편의 기사, ‘여야 감세전쟁…내놓은 안 합치면 -10조’ 등 보도는 균형 잡힌 분석과 자료 활용이 돋보였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자영업 리포트 ‘좀비 사장’ 보도는 자영업자 부채의 구조적 문제를 잘 짚었다. 정책자금 연장과 대출 확대가 반복되며 실질적 해법 없이 채무만 누적된 구조는 자영업뿐 아니라 가계, 스타트업 등 경제 전반에서 반복되고 있는데 정부 지원의 효과 등을 다른 분야로 확대해 보는 것도 좋겠다. 17일자 지면에 ‘본지 보도 이후’ 기사를 통해 상가 임대차법 개정안 발의, 경찰의 사실상 재수사 등 보도 이후 나타난 변화를 따로 다뤄서 언론의 영향력도 보여줘서 인상적이었다.
해외 산업 르포도 흥미로웠다. 구마모토의 반도체 생태계 조성과 항저우의 AI 창업 지원 사례는 산업 육성과 인재 정책 면에서 시사점을 줬다. 삼성전자의 AI 인재 이탈을 다룬 보도는 국내 프런티어 테크의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사모펀드를 다룬 보도는 전반적으로 부정적 시각이 강한데 사모펀드가 인수한 뒤 실적이 올라간 회사들도 상당수 있고 시장 내 사모펀드의 긍정적 역할도 있다.
▶이재국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18일자 경제 5면에 나온 ‘미 해군 함정 수익성 함정’ 기사는 겉으론 긍정적인 이슈 뒤에 숨은 구조적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 훌륭했다. 2월 26일자 ‘미국, 러 침공 책임 뺀 우크라 결의안 안보리 통과시켰다’ 기사도 한국의 찬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굉장히 좋은 기사였다. 다만 제목이 핵심을 담지 못해 아쉬웠다.
18일자 ‘문형배, 선고 이유부터 읽으면 만장일치 가능성’ 기사는 부제에 ‘관전 포인트’라는 표현이 달렸다. 독자들을 멀리 떨어진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표현이라 불편했다. ‘피크 코리아’ ‘큰손 아줌마’ 등 바꾸면 좋은 표현들도 보였다. 피크 코리아는 피크 아웃 코리아, 또는 정점 후 하락 등 분명한 표현이 낫지 않을까. 18일자 경제면 ‘큰손 아줌마’는 기사 내용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지철호 법무법인 원 고문=2025 자영업 리포트는 플랫폼의 과도한 갑질을 지적하고, 자영업자의 육아 문제까지 다뤄 시야를 넓혀줬다. 수출·투자·소비 위축, 자영업 폐업 증가, 사모펀드 이슈, 반도체 산업 위기 등 경제 실태를 연속 보도한 점도 높이 평가한다. 24일자 ‘여야 감세전쟁…내놓은 안 합치면 -10조’ 기사는 시의적절한 지적이며, 용기 있는 보도다. 중앙일보가 종부세, 소득세, 상속세 등 관련 이슈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 보도를 해온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탄핵 찬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도하는 것은 중도층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일부 의원의 터무니없는 발언을 담아준다든지, 집회 시위도 양측의 균형보다 극단적 발언 위주로 비치는 느낌이다. ‘계엄 뒤 여야 33명 고발전’ 기사는 고발 사실만 보도되고 이후 처리 과정은 보도되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언론 보도를 위해 고발을 남발하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어 이후 과정을 짚는 보도도 필요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이번 달 중앙일보는 연금 개혁, 탄핵, 의정 갈등을 거의 매일 다뤘고, 특히 연금 보도는 밀착 취재를 통해 국회의 논의 상황과 정치권의 입장을 전달했다.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동시에 정치권에도 압박을 주는 효과가 있었고, 연금 개혁이 일정 성과를 낸 데 기여했다고 본다. 이제 ‘구조 개혁’이라는 말도 구체적인 내용 없이 반복된다. 구조 개혁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퇴직연금 개편, 3층 보장 제도 같은 교과서적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으로 구조 개혁의 구체적 방안과 그에 따른 갈등, 사회적 비용까지 짚는 보도가 필요하다. 또 ‘자동조정 장치’를 마치 연금 개혁의 핵심 대책처럼 보도하는 것도 문제다. 이 장치는 평균 수명이 늘어날 경우 연금액을 삭감하는 제도로, 연금 제도가 완성된 후 마지막 보조 장치로 만드는 것이다.
▶오세정 위원장=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 중 하나가 아젠다 발굴과 세팅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창간 60주년 연중 기획 자영업 리포트 시리즈는 굉장히 잘한 보도다. 4일자 ‘딥시크의 고향 항저우 르포’, 11일자 ‘삼성 AI·로봇 지휘할 인재 줄줄이 짐 쌌다’ 등도 자영업 리포트처럼 크게 어젠다를 잡아 해볼 만한 주제로 보인다.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이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 산발적으로만 나오고 있어서 종합적으로 보도해주면 좋겠다. 지난달 28일자 ‘국내 기업 영업익 87% 줄 때, 주한미국기업 93% 늘었다’ 기사는 외국 기업이 세금도 덜 내고 사회 공헌도 덜 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정부와 협상할 때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의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여론 환기 차원에서 좋은 시도였다. 상법 개정 관련 보도는 이복현 금감원장이 찬성하는 이유 등이 궁금했는데 이를 해소해주는 설명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
▶홍지혜 마이아트컴퍼니 대표=12일자 ‘보물이 장물’ 기사는 제도적 분석이나 재발 방지 대책이 다소 부족했다. 2011년에 이미 도난 신고된 이력이 있던 유물이었는데, 문화재 데이터 관리 시스템의 부실함이나 기관 간 정보 공유 단절 등을 추가로 지적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냥 보물로 지정됐던 게 장물로 밝혀져 지정 취소됐다는 정도로 끝나다 보니 입체적인 분석이나 관점이 아쉬웠다. 또 진품이지만 장물이라서 보물 지정을 취소한 정책 자체가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보물 지정을 취소한다고 해서 유물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제도 개선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서도 짚어줬으면 좋았겠다.
▶김주형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혼란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사법부의 법적 판단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곡해하는 정도가 심각해 보인다. 중앙일보는 비상계엄 선포의 부당성, 부정선거 등 음모론의 위험성 등 가장 기본적인 지점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하지만 최근 탄핵 심판을 둘러싼 논쟁을 보도하는 방식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반탄파, 기각서 각하로 전략 바꿨다’, ‘전원일치 설득 중, 결정문 손질 중 관측도’ 등이 그렇다. 현 시점에서 헌재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신빙성을 따지기 어렵고, 신뢰할만한 정보원의 말도 극도로 조심해 보도해야 한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많은 이들이 모바일로 중앙일보 기사를 본다. 모바일에 선정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기사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 대만 배우 서희원 사망 관련 기사나 비키니 차림의 킴 카다시안 인형 기사 등은 장시간 노출돼 독자 피로감을 유발했고, 댓글 반응도 부정적이었다.
‘기획’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취재도 요구된다. 3월 7일자 ‘쪼그라든 내수, 서울·경기·인천서 70% 썼다’와 ‘제2 도시가 부산? 이미 인천에 역전’ 기사는 지방과 수도권의 양극화를 다뤘지만, 기획물로 보기엔 분석과 대안 제시가 부족했다. 수도권 쏠림 완화를 위한 정책 점검 등이 더해졌으면 좋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