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님이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고 주지 스님을 돌본 행위를 ‘근로’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제11민사부는 승려 A씨가 사단법인 B를 상대로 제기한 6억9500만원 규모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A 스님은 지난 2010년, 사찰 대표였던 C 스님과 “월급 300만원을 주고 퇴직할 때 서울에 포교당을 차려 준다”는 약속을 근거로 사찰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매일 법당에서 하루 세 번 예불을 드리고, 급성 신부전증을 앓던 C 스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니며 업무를 도왔다. 또 사찰 소유 건물의 청소·관리도 맡아왔다.
C 스님이 사망한 뒤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사찰 이사가 “새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 건물 관리와 법당 기도를 계속해 달라”고 요청했고, A 스님은 기존 업무를 그대로 이어갔다. 그러나 사찰 측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그는 “13년 9개월 동안 미지급한 임금 4억9500만원과 포교당 약속 2억원을 합한 6억9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핵심 쟁점은 A 스님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A 스님은 재판에서 사찰 측이 자신에게 ‘A가 재적 승려임을 증명한다’는 승적증명서와 재직 증명서를 발급해준다며 근로자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예불과 관련해 맡은 구체적 업무 내용이 무엇인지, 근무 시간 및 장소를 지정해 지휘·감독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A 스님과 사찰 사이에 명확한 근로계약 자체가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C 스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닌 것은 개인적 약속에 의한 것이지 C가 사찰의 근로자로서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C 스님이 A 스님에게 이 사건 건물의 관리 등을 지시하면서 월급과 포교당을 약속한 것은 맞지만, 사찰 측이 A 스님에게 그러한 지시나 약정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종교계 내부의 고용 구조를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종교단체에서 일하는 승려·수녀·목회자들이 생활비 성격의 지원을 받더라도, 지휘·감독 구조와 임금 지급 체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근로자로 인정받기 어렵다”며 “종교인의 근로자성을 쉬쉬하는 분위기에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종교인의 근로자성 판단을 회피할 게 아니라 종교단체 내부에서 명확한 고용계약 여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