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사단원’ 노재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7-21

1991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각료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APEC은 정치와 무관한 경제 협력 기구인 만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물론 중화민국(대만), 그리고 당시 영국령이던 홍콩도 회원으로 참여했다. 서울 회의를 앞두고 중국은 우리 외교부에 “대만과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만 대표단이 ‘중화민국’이란 국호를 내걸고 참석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단 ‘중화대만’(Chinese Taipei)이란 명칭은 양해가 가능하다”고 요청했다. 그 시절 한국은 중국과는 국교가 없고 대만과 수교한 상태였다. 대만은 강하게 반발했으나 약자의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APEC 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을 위한 환영 만찬을 앞두고 또 논란이 불거졌다. 첸지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장관)이 “만약 대만 대표인 진수지(金樹基) 주한 대만 대사가 만찬장에 모습을 나타낸다면 나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탓이다. 대만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른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른 주장이었다. 당시 공산권 국가들을 상대로 북방 외교를 활발히 전개하던 한국은 중국과도 물밑에서 수교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한국 측의 간곡한 요청에 진 대사는 만찬 참석을 포기했다. 첸 부장은 APEC 회원국들 대표단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당당한 태도로 유유히 만찬장을 누볐다.

이듬해인 1992년 8월 마침내 한·중 수교가 이뤄졌다. 자연히 대만과는 단교(斷交)할 수밖에 없었다. 옛 친구를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한국인들은 크게 흥분했다. 당시 중국 인구는 11억명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이런 거대한 시장이 한국 기업들 앞에 활짝 열렸으니 우리 수출 증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됐다. 그간 북한하고만 가까웠던 중국이 한국과 친구가 되며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장차 통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줄을 이었다. 수교 후 1개월 만인 1992년 9월 노태우 대통령은 우리 국가원수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해 3박4일간 중국 측 인사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조만간 중국에 특사를 보낼 예정인 가운데 노재헌(59)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이 특사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노 이사장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1∼2022년 외교부 한중관계미래발전위원회 사회문화분과 위원장을 지내는 등 중국과 인연이 깊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1992년 한·중 수교의 주역인 노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2021년 10월 노 대통령이 89세를 일기로 별세했을 때 중국 외교부는 “(노 대통령은) 중국에 우호적이었으며 한·중 수교와 양국 관계 발전에 중대한 공헌을 했다”고 고인을 기렸다. 노 이사장이 특사단에 합류하는 경우 중국은 이를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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