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톱보다 작은 스티커에 속칭 ‘물뽕’으로 알려진 마약 GHB의 대체 시료를 묻히자 스티커 절반이 서서히 푸르게 물들었다. 스티커가 마약 성분을 감지했다는 의미다. 이 스티커를 네일아트처럼 손톱에 붙여두고, 클럽 등 술자리에서 마약이 섞여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음료를 살짝 묻히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고도 약 10초 안에 음료가 안전한지 알 수 있다.
최신 치안 기술이 모인 ‘국제치안산업대전(KPEX)’의 한 부스에서 22일 처음으로 소개된 ‘GHB 검사 네일스티커’ 이야기다. 스티커 개발사인 필메디 김지홍 차장은 “과거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만들게 된 제품”이라며 “낯선 분위기의 술자리에서 조용히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22~25일 나흘간 열리는 이번 KPEX에는 국내외 216개 기업이 참여해 각종 범죄 대응 기술을 선보였다. 올해로 7번째를 맞는 이번 KPEX는 특히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치안 기술 기업이 다수 참여했다.
특히 최근 미국·영국이 캄보디아 거점의 조직적 사기 범죄 배후 ‘프린스 그룹’ 천즈(陳志·38) 회장의 150억 달러(약 21조원) 상당 비트코인 12만7271개를 압류하는 데 쓰인 ‘블록체인 추적’ 기술도 박람회에서 소개되고 있었다. 이 기술을 국내에 소개하는 업체 세이퍼링크 이호근 이사는 “가상자산은 기존 화폐와 달리 세탁 과정을 거치면 추적이 매우 어려워진다”며 “앞으로는 AI를 통해 가상자산 기반 범죄수익을 추적하는 기술이 경찰 수사에 필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기술을 접목한 폐쇄회로(CC)TV로 범죄 용의자나 차량, 실종자를 빠르게 찾아내는 기술은 여러 기업이 출품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었다. 한 업체는 “약 3000만명의 얼굴이 찍힌 영상에서 0.04초 안에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며 “국내에서 개발한 AI 기술로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업체도 “차량 절도범을 사건 발생 30분 만에 잡거나, 실종된 치매 노인을 빠르게 찾아내는 성과를 냈다”며 “지방자치단체 관제센터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치안산업대상’ 수상자 중에도 AI 관련 기술 개발자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푸름 ㈜지오비전 선임연구원은 ‘AI 기반 아동학대 감지 기술을 활용한 영상 분석·요약 시스템’ 과제로 대상을 받았다. 이 시스템은 딥러닝을 통해 학대 의심 상황(쓰러짐·폭행 등)을 검출하고 이를 요약해 주는 기술이다. 기존에는 3096시간 분량의 어린이집 CCTV 영상을 분석하는 데 96일이 걸렸는데, 이 시스템을 통해 분석 시간을 기존의 5분의 1인 20일 수준으로 줄이는 성과를 냈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경찰 순찰용 사족보행 로봇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국산 사족보행 로봇 핵심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해낸 이인호 부산대 교수도 올해 치안산업대상을 받았다. 사족보행 로봇은 사람이 가기 어려운 험지 등에서 순찰 업무를 지원·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경찰은 이번 박람회에서 총 2500억원 규모의 수출 상담을 진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AI를 악용한 디지털 성범죄, 보이스 피싱, 투자 사기 등 신종 범죄가 빠르게 증가하는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K치안산업’을 육성하고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며 “K치안산업 분야 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경찰관 새 복장도 공개

경찰은 ‘창경 80주년’을 맞아 10년 만에 바꾸는 경찰관 복장도 이날 공개했다. 모자·근무복·점퍼·조끼 등 17개 품목을 새로 만들었는데, 디자인에 참여한 국민대 측은 경찰 색상인 ‘폴리스 네이비’로 경찰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지역경찰관 점퍼는 기존의 진회색에서 어두운 진청색으로, 모자는 낮고 평평한 모양에서 참수리를 연상케 하는 높고 깊은 형태로 바꿨다. 경찰은 큰 폭으로 모습이 변하는 점퍼와 모자의 경우 향후 2년 안에 순차적으로 보급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