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9월 9일이 ‘귀의 날(Ear Day)’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1962년 숫자 9의 발음이 ‘귀’와 유사하고, 숫자 9의 모양이 귀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해 처음 지정해 올해 59회를 맞았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20년을 경영 최일선에서 분투하던 필자는 2017년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청각장애인의 인공 달팽이관 수술과 자립 등을 돕는 비영리단체인 ‘사랑의 달팽이’라는 단체를 접하면서 귀의 날을 처음 알게 됐다.
9월 9일 ‘귀의 날’ 청각장애 주목
비용 부담 큰 인공와우 외부 장치
미·일·호주처럼 국가 지원 시급

국내 등록 장애인 숫자는 약 264만명(2024년 보건복지부)인데, 그중 지체장애가 43.7%로 가장 많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청각장애(16.8%)다. 청각장애는 다른 장애와 달리 일정한 지원을 받으면 장애에서 자유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 모두의 작은 관심이 모이면 청각장애인에게 큰 희망이 생긴다는 사실에 이끌려 필자는 2000년 출범해 올해 26년째를 맞은 이 단체의 회장까지 맡게 됐다.
청각장애에 대한 관심이 절실한 이유는 또 있다. 보건복지부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2023년 신규 등록된 장애 중 청각장애 비중이 31.2%로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청각장애가 더 이상 남의 일만이 아닐 수 있으니 그만큼 한국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셈이다. 청각장애 중에서도 선천성과 돌발성 장애의 경우 인공 달팽이관 수술을 하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인공 달팽이관 수술을 받은 청각장애인은 지난해 약 1만3500명이었다. 요양급여 미적용 수술 환자까지 포함하면 약 2만6000명으로 추정된다.
인공 달팽이관은 수술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외부장치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주고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인공 달팽이관 외부장치 가격은 평균 1000만원인데, 양쪽 귀를 모두 수술할 경우 비용이 두 배다. 머리에 부착하는 외부장치는 밖으로 노출되는 데다 습기에도 취약해 분실과 고장 위험도 크다.
외부장치에 대한 정부 지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현행 건강보험 규정에 따르면 인공와우 수술의 경우 1회에 한해 급여를 인정한다. 외부장치의 주기적 교체에 따른 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경북 칠곡에 거주하는 한 어머니는 다섯 자녀 중에 4명이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 그 어머니는 “외부장치 교체 주기가 돌아올 때마다 비용 때문에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했다. 그의 사연을 듣고 마음이 참 무거웠다.
한국과 달리 미국·영국·호주·일본에서는 5년 주기로 외부장치 교체 비용을 국가가 전액 지원한다. 인공 달팽이관을 단순 의료기기가 아니라 국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복지 차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는 것이다.
‘사랑의 달팽이’가 2022년 전국 인공와우 사용자 6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는 “외부장치 고장 또는 성능 저하를 경험했지만, 비용 문제로 교체를 미뤘다”고 답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불편을 참고, 심각할 경우 소리가 없는 세상으로 단절된다는 얘기다. 비영리단체가 수술과 자활을 돕고 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도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으니 청각장애인의 외부장치 교체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관련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 연간 700여 명의 청각장애인이 외부장치를 교체하고 있으며, 정부가 5년마다 40%를 지원할 경우 필요한 예산은 연간 30억원 미만이다. 전체 장애 관련 복지 예산에서 보면 큰 규모는 아니지만, 청각장애인들에겐 삶의 질을 결정하는 소중한 복지 지원이다.
‘사랑의 달팽이’에서 소리의 기쁨을 되찾은 아이들이 재활 차원에서 악기를 배우고, 공연도 무대에 올린다. 매번 무대는 감동을 선사한다. 엄마와 아빠가 아이에게 “잘 잤니”라고 인사하는 목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등 일상의 소소한 소리를 듣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다. 인공와우 외부장치 교체를 단순 의료기기가 아니라 이제는 생애주기에 맞춘 필수 복지로 인식을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주권과 행복을 우선하는 새 정부가 과감하게 정책을 개선하길 간곡히 촉구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행희 ‘사랑의 달팽이’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