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과 키보드 당원의 '잘못된 만남'…좌표정치만 남았다 [유권자 25% 당원시대]

2025-11-05

윤모(61·여) 씨는 지난 2022년 20대 대선 직후 온라인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충격에 자매들까지 모두 당원으로 가입시켰다. 하지만 윤씨는 온라인에서만 활동한다. 그는 “가짜뉴스 동영상을 찾아 신고하고 댓글을 다는 게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며 “활동을 통해 큰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권리당원이 된 학원 강사 박모(32)씨 역시 주로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당원이다. 박씨는 “지역 교육계에 민주당 지지자가 많고, 학생·학부모가 반발할 가능성도 있어서 오프라인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며 “유튜브·기사에 댓글을 달고 당비를 내는 게 나의 참여 방식이다. 당협위원장이나 당직자와는 교류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당원 활동의 중심축이 오프라인 조직에서 온라인 팬덤으로 급격히 이동한 현재, 윤씨와 박씨 같은 온라인 전용 당원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민주당의 한 지역위원장은 “요즘은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당원이 워낙 많아 자기 지역 내 권리당원 20%도 모르는 지역위원장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한 당직자도 “당원 활동이 온라인 중심이 되면서 각 시·도당 차원의 조직 활동은 갈수록 무의미해지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해외 전문가들도 정당의 당원들이 온라인 댓글 활동이나 1회성 경선 투표에 몰입하는 현상이 한국 정치의 특이점라고 평가했다. 아우렐 크라우상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교수는 중앙일보에 “독일 당원들은 회의·총회·당대회 등 직접 만남을 통한 교류와 의사 결정이 정당 활동의 중심이 된다. 주나 연방 차원의 당 대회에서 대의원들이 의원 후보자 명부도 결정한다”며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당원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이점을 만든 건 거대 양당이 의도적으로 온라인 정당화 경쟁에 몰두한 결과다. 과거 정당 가입은 지구당 방문이나 우편·팩스로만 가능했지만, 2015년 8월 정당법 개정 후엔 온라인 입당이 가능해졌다. 인터넷을 통해 가입한 뒤 당비 월 1000원만 일정 기간 내면 누구나 권리·책임당원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기에 유력 정치인에 대한 자발적 ‘팬덤’ 현상이 결합되며 당원 수는 폭증했다.

온라인 기반 당원의 증가는 정당 의사결정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원·대의원 간 토론을 통한 오프라인 숙의보다는 강성 온라인 당원 활동 게시판의 여론에 중앙당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지난 9월 국민의힘과 합의한 정부조직법 협상안을 하루 만에 파기할 때도 권리당원들의 온라인 민심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게시판 여론에 즉각 반응한 당내 강경파들이 공개 반발하고 정청래 당 대표까지 재협상을 지시하며 하룻밤 사이에 협상이 뒤집어졌다. 지난해 5월 ‘국회의장단·원내대표 선거에 당원 투표를 20% 반영한다’는 내용으로 당헌을 개정한 민주당에선 대의제 기구의 구성에도 보이지 않는 온라인 당원들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원들이 숙의를 통해서 정책을 만드는 과정을 훈련하는 대신 선거 등에서 동원되거나 정적을 제거하는데 도가 지나치게 이용되고 있다”며 “당원들이 보병 부대처럼 특정 정치인을 보호하거나 그의 정적을 공격하고, 정치인들은 그걸 악용하면서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도 “온라인 상에서 쏠려 다니는 당원들의 감정적 반응에만 기대 당의 진로를 정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방식”이라면서도 “공격의 표적이 될까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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