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을 연구·정책으로 환류시키는
전문가들이 그 선순환의 심장 역할
보상·지원 등 최소한의 여건 갖춰야
공공의료 최전선… 작년 적자만 180억
보조금은 5% 불과… ‘국립’ 간판 무색
최근 5년 의사 8%·간호사 18% 떠나
‘서울 쏠림’ 지역 의료체계 붕괴 가속
진단·수술·치료·돌봄까지 권역서 해결
‘지역 완결형’ 의료 시스템 구축 시급
급속히 진행되는 초고령화와 함께 국민 20명 중 1명이 암 유병자인 시대가 됐다. 암은 대표적인 ‘노화 질환’인 만큼 향후 ‘암 경험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2001년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가 문을 열 때는 이런 선견지명이 작용했다. ‘선진국 질환’인 암 증가에 발맞춰 정부가 국가 암 정책 컨트롤타워를 세운 것이다. 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내 최초로 양성자 치료기 도입도 이런 선도적 역할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국립암센터의 위상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그러나 2025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의정갈등 사태를 거친 후 그 위풍당당함은 빛이 바랬다. 코로나19로 인한 손실에, 인력 이탈로 인한 적자가 연간 400억원에 달한다. 내년에는 650억원 차입이 불가피한 상황. 암 환자 ‘최후의 보루’인 부속병원은 더욱 심각하다. 상급종합병원 수준의 기능과 역량을 갖췄지만 수가는 2차 병원 수준으로 적용받는다. 게다가 ‘국립’이라는 간판이 무색하게 병원에 대한 국가보조금은 5%에 불과하다.

양한광 국립암센터장은 지난해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취임했다. 다음달 취임 1년을 맞는 양 원장은 지난 1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립암센터는 단순히 암을 치료하는 병원만이 아니라 전문적인 연구와 진료를 통해 국가 암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세계 유수의 암센터와 어깨를 견주는 국가 중앙 암기관”이라며 “국민 보건 향상이라는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올해로 설립 25년째가 된 국립암센터는 암 진단 이전(예방·검진)부터 치료, 사회 복귀, 존엄한 임종(호스피스)에 이르기까지 암 환자의 전 주기를 다루고 이를 위한 정책을 내는 국가 기관이다. 임상을 연구와 정책으로 환류시키는 선순환을 위해 가장 중요한 축은 ‘인재’라고 양 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슈퍼 스페셜라이즈드(Super-specialized) 인재, 임상과 연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문가들이 그 선순환의 심장”이라며 “세계 수준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유지하려면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취임 1년 소회는 어떠한가.
“코로나19의 재정 여파와 의정갈등 속에서 첫해를 시작했다. 국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한 해였다. 상급종합병원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병상을 약 25% 줄이는 동안 우리 병실은 본관 정비로 인한 축소를 포함해 6% 정도만 줄었고, 사실상 의료 공백은 거의 없었다는 평가다. 50대 의료진까지 함께 당직을 서며 힘들게 의료 현장과 우리 기관의 공공성을 지켜낸 결과다.”
ㅡ적자경영이 심화하고 있다.
“코로나19와 의정갈등으로 적자가 누적됐다. 국립암센터는 중증환자를 가장 많이 보는 곳이지만 분류상 경증이 많은 2차 병원으로 잡혀 있는 상황도 한계로 작용한다. 암 환자 특성상 상급종합병원 지정 요건인 분만실, 신생아실 등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가가 낮고 각종 지원에서도 비켜났다. 가장 적자가 많이 나는 분야는 소아암 및 안구암 등 희귀암 영역이다. 2023년 160억원, 2024년 180억원 적자가 났다. 수익성이 낮아 민간병원에서는 기피하는 영역들이다. 치료 이후 사회 적응과 정신건강을 돕는 의료사회사업도 마찬가지다. 부속병원의 수익률이 연간 1%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ㅡ정부가 지난 5월 ‘특성화 기능 보상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의미 있는 출발선이다. 암 유병자가 258만명을 넘는 현실을 반영해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전환이 법적으로 어려운 한계를 보완하는 ‘암 특화형 지원’을 시작했다. 연 99억원이 3년간 보전돼 진료·연구 기반을 일부 지탱한다. 물론 상급종합병원 전환 시의 지원금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지만 공공영역 적자의 구조적 위험을 낮추는 데 의미가 있다. 성과지표를 엄격히 관리해 시범을 상시 사업으로 전환하고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ㅡ최근 5년간 평균 의사 8%, 간호사 18%가 센터를 떠났다.
“보상 격차 탓이 크다. 의료진의 임금 역시 공공기관 총액임금상한액 가이드라인에 따라 책정되기 때문에 민간병원과 경쟁이 어렵다. 그렇다고 연봉 경쟁만이 답은 아니다. 암센터는 연구소와 임상이 맞물려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의료진이 자긍심과 만족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공동과제 가점 부여 등 ‘남을 이유’를 키우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다만, 공공기관 인건비·채용 가이드라인의 유연화와 야간·당직·필수의료 가산 수당 현실화 정도는 필요하다. 외부 제안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준의 최소한의 안정적 보상 틀이 갖춰져야 한다. 실력과 사명의식을 갖춘 우수한 인재들을 붙잡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인책이 필요하다.”

ㅡ올해 일본인 의사과학자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세계적으로도 노벨의학상 수상자의 30%가 의사 출신이다.
“노벨상은 장기 축적의 결과다. 일본은 연구자 우대 풍토 위에 ‘연구소-의대과학자-임상’ 트랙을 이어 인재를 키웠다. 국립암센터는 애초에 연구 중심 병원으로 설계됐다. 태생부터 의사과학자 제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제약이 많다. 이상적으로는 환자는 이만큼만 보고, 남는 시간엔 임상의(MD)와 기초과학자(PhD)가 토론해 새로운 답을 찾는 이른바 ‘4차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오늘의 수익’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는 그럴 수 있는 시간과 보상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 결론은 명확하다. 인재가 곧 인프라다.”
ㅡ공공기관 특유의 경직성은 없나.
“진료만큼 중요한 게 투명한 지표와 조직 문화다. 데이터의 투명성은 무언의 압력과 복원력을 만든다. 그러나 취임 후 와서 보니 국립암센터는 진료가 필요한 가족·지인에게 담당 의사를 추천하겠냐고 묻는 환자경험조사(NPS)를 하고 있지 않았다. 바로 도입해 이 NPS지수를 과와 개인 단위로 모니터링하고 낮은 지표는 코칭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했다. 점수라는 것이 처음엔 불편할 수 있지만, 지표가 있어야 자신을 볼 수 있고 발전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원장인 나에 대한 상급자 역량평가나 같은 과 교수들끼리 수술 동영상을 함께 보며 개선점을 찾아가는 ‘피어 리뷰’도 시작했다.”

ㅡ암 생존율이 최근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국가암검진 체계 등 공공정책 관련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5년간 생존할 확률)이 1990년대 43%에서 30여년 만에 73%로 뛰었다. 건강검진 체계가 잘 갖춰져 암세포를 일찍 발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책의 핵심은 정밀검진과 미검진 해소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가건강검진 참여율이 30~40%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70%까지 올라갔다. 여전히 제도 바깥에 있는 30%의 국민들을 어떻게 검진을 할 수 있게 하느냐 고민을 해야 한다. 동시에 선별검진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위암의 경우, 주원인인 헬리코박터 연관 위험군을 더 정밀하게 정의해 같은 비용으로 발견율을 높이는 식이다. 국립암센터 주도로 하고 있는 위·대장·간·유방·자궁경부·폐암 등 6대 국가암검진 권고안 개정 작업도 이 일환이다.”
ㅡ치료 이후의 삶도 점점 중요해진다.
“조기 발견이 늘면서 수술만으로, 때로는 내시경으로 치료를 끝내는 분들이 많아졌다. ‘암 생존자’ 대신 ‘암 경험자’라는 호칭이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이유다. 사회적으로는 치료 후 기능·후유증 수준을 등급화해 지원을 맞춤화하는 정책들을 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암 경험자들은 참여가 제한됐던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체력측정 프로그램의 대상을 넓힌 것이 그 출발이었다고 생각한다. 암 치료 후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암 경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체계적 신체 상태 평가는 물론, 맞춤형 운동 상담을 지원했다. 또 창업이나 사회복귀에 필요한 재교육 등도 국립암센터가 해야 하는 연속성 있는 돌봄의 일환이다.”

ㅡ지역 간 격차를 줄일 해법은.
“지금 우리 의료계에 제일 중요한 키워드가 지역 간 격차다. 한국의 의료는 멀리 미국에서 올 정도이니 지방에서 서울에 오는 일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서울 쏠림’ 현상은 심해지고 지역 의료체계는 더욱 흔들린다. 여기에 대한 답은 ‘지역 완결형’이다. 진단·수술·치료·말기돌봄까지 권역암센터 네트워크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현재 13개 지역에 권역암센터를 지정해 운영하고, 권역 협진·전원 체계를 촘촘히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소아청소년암 세부 전문의가 없는 강원 지역에 정년 퇴직한 서울대병원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파견해 외래 진료를 지원하게 했다. 취약지역의 필수의료를 지원할 방안으로 좋은 평가를 얻었다.”
양한광 국립암센터 원장은…
●1960년 충남 공주 ●서울대대학원 외과학 박사 ●대한위암학회 이사장 ●대한종양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암학회 이사장 ●서울대병원 암병원장 ●대한종양외과학회 회장 ●2023년 6월∼ 국제위암학회 사무총장 ●2024년 11월∼ 국립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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