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 바꾸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국내 최초 CDISC 데이터 3종 자격 취득, 대구가톨릭의대 곽상규 교수
통계의 눈으로 보면 의료기관은 하루에도 천문학적인 양의 데이터가 생산되는 공장과도 비슷하다. 환자의 나이와 성별, 키와 몸무게에서 시작해 진단명과 각종 검사 결과, 처방을 내린 약제의 성분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데이터다. 과거부터 이런 데이터는 쌓이고 쌓여 빅데이터를 형성했으나 데이터 사이의 연관성과 추세 등을 발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최근 급속도로 이뤄진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이 빅데이터를 분석해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보를 환자마다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곽상규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의학통계학)는 이런 변화를 감지해 의료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의 국제 표준을 제정하는 기구인 국제임상데이터표준컨소시엄(CDISC) 인증 데이터 관련 3종의 자격을 국내 최초로 취득했다. 곽 교수를 지난 5일 연구실에서 만나 미래 의료의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의료현장에선 어떤 역할을 하나.
“병원에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엄청나게 많이 도입되면서 의료 환경이 변하고 있다. 옛날에는 종이 차트에 손으로 썼던 의무기록이 이제 다 전자화돼서 데이터로 활용 가능하게 축적되고 있다. 의학통계학이라는 분야는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이런 데이터를 수집·가공·분석해서 새로운 정보를 산출해낸다. 이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령 혈압이 180㎜Hg 이상인 고혈압 환자라면 어떤 약을 처방할지, 뇌출혈이 일어난 범위가 어느 정도 이상이면 두개골을 열어서 수술할지 등의 진료지침을 만들 수 있게 됐다.”
환자 의무기록들 데이터로 축적
현재는 하나의 질환만 집중 분석
미래엔 종합 건강포트폴리오 기대
병원 기존 데이터로 AI 모델 개발
실제 환자 심정지 위험 예방 효과
병원별 데이터 통합 땐 효과클 것
- 상당한 발전을 이뤘지만 환자 입장에선 체감되는 변화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병원에 환자들이 오면 혈액검사도 하고 초음파나 엑스레이도 찍고 각종 검사들을 한다. 보통은 그 검사 결과를 이용해 환자가 아프다고 하는 부위의 진료에만 활용하는데, 지금까지 나온 인공지능·빅데이터 적용 소프트웨어도 하나의 질환이나 변수만 집중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흉부 엑스레이를 찍으면 인공지능이 분석해서 폐렴이나 폐조직의 섬유화가 의심되는 부위를 표시해주고, 심전도 검사를 하면 각각의 심장질환 위험 확률을 계산하는 그런 방식이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시간을 크게 단축시키고 의사들이 활용하기 편하게 발전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데이터를 더 넓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향후엔 어떻게 개선될까.
“환자 개인에겐 한두 가지 검사 결과지만 이것들을 모으면 다른 질병을 앓을 위험에 대한 확률도 계산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당뇨병 환자가 내원하면 기존에는 내분비내과 진료만 봤지만, 검사 결과를 가지고 뇌졸중, 위암, 갑상선암 같은 다른 병의 발생 위험도도 퍼센트로 제공해주는 ‘건강 포트폴리오’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러려면 결국 수많은 데이터를 집적한 빅데이터가 필요하고, 그걸 분석하기 위한 인공지능 모델이 필요하다. 지금은 초기 모델이지만 빅데이터가 더 축적되면 환자 한 명의 상태를 입력만 해도 대장암·위암·갑상선암 등 각 질환별 위험도가 계산된 건강 포트폴리오가 나오도록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 실제 현장에서 인공지능·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경험이 있나.
“심혈관질환은 없이 무릎이나 골반 등 다른 부위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입원 후 심정지가 오는 경우가 많은 걸 보고 의아해한 적이 있다. 갑자기 블루코드 방송이 나와서 몇 병동 몇 호실로 부르면 의료진이 막 뛰어가는 그런 상황이다. 환자가 수술을 받고 장시간 병실에 누워 있다 보면 평소 걷고 활동을 할 때보다 심정지 위험이 올라가기 때문인데, 그런 사망률을 좀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 박동수가 느려지는 패턴을 인식해 심정지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있어 도입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기대만큼 잘 작동하지 못하길래 내가 직접 우리 병원 과거 10년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혈압 외에 맥박, 체온 등 바이탈 사인은 물론이고 전신마취를 했는지, 부분마취를 했는지 등 다른 데이터까지 적용해 인공지능 모델을 만들어 특허 출원했다. 간호사들이 실제 병동에서 쓸 수 있게 환자의 심정지 확률이 일정 비율 이상 올라가면 바로 알림이 뜨게 해둔 덕분에 이 시스템을 적용한 이후 여러 명의 환자가 심정지 위험에서 살아났다.”
- 병원마다 각자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병원의 데이터를 공유해 활용하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각 병원마다 엄청난 의료 데이터가 쌓이지만 그걸 정부 차원에서 모아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은 없는 상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축적된 데이터는 환자에게 진단명에 따른 처방을 제대로 했는지에 집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심사용일 뿐이고, 검사 결과 같은 구체적인 데이터는 없다. 개인의 민감한 의료정보를 수집하는 데 대한 법의 규제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접근 가능하게 축적한 빅데이터가 없으니 희귀질환처럼 각 병원에서 진료하는 건수가 매우 적은 질환에 대해선 제대로 통계적 분석을 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전국의 병원에서 데이터를 모두 모으면 보다 나은 수준의 분석이 나올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 보통의 환자나 보호자는 통계라 하면 치료의 성공 또는 실패 확률만 떠올리기 쉬운데 확률의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사실 각 개인이 처한 상황마다 판단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운동장에 100명이 서 있는데 단상에서 물풍선을 던져 맞을 확률은 30%, 총을 쏴서 맞을 확률은 5%라 치자. 물풍선에 안 맞을 확률은 70%여서 확률만 보면 총에 안 맞을 확률 95%보다 낮지만 대부분은 물풍선을 택할 것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수술 실패 확률이 30%인데 선택하라고 하면 많은 환자들이 의사에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되묻지만, 정작 의사들도 본인이나 가족이 그 수술을 받아야 하면 고민하게 된다. 실패 확률이 1%라 하면 낮아 보이지만 그게 자신에게 일어날 수도 있고, 반대로 성공률은 20%라 해도 낮아 보이는데 자신이 그 20%에 들어서 완치가 될 수도 있다. 확률의 양면을 함께 보는 사고의 전환이 있으면 좋겠다.”
- 최근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의학교육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의대를 의사를 배출하는 곳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나는 의학을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을 배출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료를 한 뒤 증상을 기반으로 검사하고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그런 절차와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니라, 의학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능력까지 더욱 함양했으면 좋겠다. 특히 미래 의료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생각하면 연구에 필요한 능력 중 하나로 의료 데이터를 수집·분석·가공해서 정보를 산출하는 의학통계학적 소양도 필요하다. 현재 많은 의대 중 의학통계학이나 의료정보학 등의 이름을 단 교실이 많은 편이 아닌데, 앞으로 좀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