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24년 대한민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여름과 최장기 열대야를 경험했다. 이 극단적인 기상이변의 원인을 검색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후위기’라는 단어와 마주했을 것이고, 그것을 정치권 안에서만 맴도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기후위기는 우리의 안락한 생활과 지구상에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키워드다. 그리고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 연료에서 풍력, 태양광 같은 지속가능한 연료로의 에너지 전환은 기후위기 가속화를 막을 주요한 해법이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설도 지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해상풍력의 경우 현재 업계에서 주력하는 발전기 크기가 해수면에서 날개 끝까지 최대 286m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경관과 안전성을 이유로 발전기의 대형화에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지난 20년간 풍력발전 단가 절감은 모두 시설의 대형화 덕분이었다. 날개 길이를 2배 늘리면 전력 생산은 4배가 증가하고, 발전기가 커지면 같은 발전단지에 필요한 하부구조물 수는 줄어든다. 그래서 현재는 초대형 발전기의 생산이 업계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런 추세에 국내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32m 높이의 발전기를 시험 운영 중이고, HSG성동조선과 SK오션플랜트는 240m 높이 발전기의 하부구조물을 제작하여 대만에 수출하고 있다. 올해 한화오션이 덴마크 선박회사로부터 주문받아 진수한 해상풍력설치선도 250m 이상의 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다. 이 밖에도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SK에코플랜트, 대우건설 등 부유식 풍력발전 시장에 진입하려는 국내 기업들 모두 대형화에 집중하고 있다.
풍력발전기의 대형화는 비단 관련 업계만의 이슈가 아니다. 2021년 기준 국내 전력 사용량 1, 2위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RE100에 가입했다. 2050년까지 해당 기업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RE100 목표 이행을 위해서는 풍력 발전으로 생산된 에너지 사용이 필요한데, 이는 풍력의 단가가 곧 제품의 단가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즉, 발전 단가를 낮추는 대형화는 곧 반도체를 위시한 국내 기업의 수출경쟁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러한 흐름에도 국내에는 해상풍력 발전기의 대형화를 제한하는 제약도 있다. 500피트(약 150m)가 넘는 발전기에 대해 레이더 차폐를 우려하는 국방부의 동의를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대만은 우리처럼 군사적 긴장도가 높은 국가지만 현재 타이중 인근 대만해협에 2026년 완공을 목표로 대형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 중이다. 창화2B&4 단지에는 240m 높이의 풍력발전기가 설치 중인데, 여기서 생산된 전력은 모두 반도체 회사인 TSMC가 구매하기로 했다.
Size does matter, 규모가 중요하다. 1998년 영화 ‘고질라’의 홍보 문구였던 이 문장은 지구상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기계 중 하나인 풍력발전기의 앞날을 설명하는 데도 적합해 보인다. 기후위기의 해결과 국내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풍력 발전의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고 발전 설비의 대형화 역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합리적인 단가로 생산해 에너지 전환을 이루는 목표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길 기대한다.